(현대소설) 염상섭, <효풍>-지문 해설, 대비 문제(2022년 11월 고2 모의고사 기출)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202211, 고2)

 

“그럼 어쩝니까? 모리*를 압니까? 글을 팔아 호구가 되겠습니까?”

사십이나 되어 보이는 주인은 기름때가 묻은 비행사 옷 같기도 하고 작업복 같은 것을 입고 고무신짝을 끌었다. 이때껏 부엌에서 빈대떡을 지지다가 내다보던 길에 알은 체를 한 모양이다.

“빈대떡은 병문 친구 계급에서 해방이 되어 당신 같은 문화인 덕에 출세를 했으나 근대 조선의 신문화를 돼지비계에 지져 내서야 될 말요.”

영감은 미소를 띠어 보이며 술잔을 들어 마신다. 영감은 이 사람의 호(號)가 남원(南園)이란 것은 머리에 떠오르는데 그 이름이 생각나지 않아서 자기의 건망증에 짜증이 날 지경이나 어쨌든 십여 년 전에 자력으로 잡지도 경영하고 신진 작가로 이름을 날리던 사람이다. 영감은 너무나 의외인 데에 어이가 없고 가엾은 생각이 났다. 잔을 비어 술을 권하니까 주인은 손을 내두르고 주전자를 들어 따라 주며,

 

“선생님이 이런 세상에 양식집 찻집을 내놓고 ㉠빈대떡집에를 들어오실 줄은 몰랐습니다.”

고 웃는다. 주인의 눈에는 미국 갔다 온 이 하이칼라 노신사가 빈대떡 접시를 앞에 놓고 앉았는 것이 가엾어 보였다.

“응! 내가 이렇게 영락하기나, 남원이 붓대를 던지고 녹두를 갈고 지짐을 부치기나 가엾긴 일반요마는 비프스틱이나 코코아 맛을 본 지도 벌써 퍽 오랬소.”

영감은 아까는 다리를 쉬어 가려고 찻집을 찾아도 보았고, 또 해방 전후 한때는 식당이나 찻집 아니면 발을 들여놓지 않았지마는 근자는 발을 뚝 끊었다.

“그 왜 그러십니까?”

“왜 그러다니? 사시미가 싫듯이 비프스틱도 싫어졌고 사쿠라, 모찌가 싫듯이 초콜릿도 싫어졌구려!”

하고 김관식 영감은 커다랗게 껄껄 웃는다.

 

[중략 부분 줄거리] 해방 전에는 친일을 하다 해방 직후에는 우익 청년단을 이끄는 재산가 박종렬은 한 청년과 함께 김관식을 찾아온다.

 

 

“책두 인젠 그만 보고 차차 속계로 나와 보는 게 어떠신지?

이런 세상에 그래 책 볼 경황이 있더란 말요?”

박종렬 영감은 서고에나 들어온 것 같은 생각으로 주객 세 사람이 무릎을 맞대고 앉을 만한 틈만 남기고, 책으로 꽉 찬 방안을 돌려다 본다. 이 영감은 김관식이를 융통성 없는 학구쟁이라고 대수롭게 여기지는 않으면서도 가끔 와서 이 ㉡서재에 들어와 앉으면 어쩐지 기가 눌리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이 세상이 어떤 세상인지는 모르겠으나 이런 세상이니 책이나 보고 들어앉았는 것 아닌가?”

주인은 냉소를 한다.

“ⓐ그래두 선생님 같으신 선배께서 제일선에 나오셔서 지도를 해 주셔야지요.”

앞에 앉은 청년도 이런 소리를 하며 이름도 모를 양서며 한서가 그뜩 찬 사벽을 둘러본다. 두 주먹을 무릎에 짚고 어깨를 떡 뻐기고 완만스럽게 앉았기는 하나, 길길이 쌓인 책을 보고는 약간 경의를 표하는 말눈치다. 그러나 영감은 처음부터 안하무인인 그 태도가 아니꼬웁게 보여서 말대꾸도 아니 해 준다.

“실상은 영감을 서재에서 거리로 끌어내려고 오늘 이렇게 온 건데 나서 보지 않으려나?”

 

 

청년이 덤덤히 앉았는 것을 보고 박종렬 영감이 한 마디 거든다.

“거리에야 늘 나가네. 오늘도 나가 보았지만 눈에 보이느니, 눈에 들어가느니 먼지뿐이데! 쓰레기통 속을 헤매느니보다는 이 한 칸 방이 내게는 더없는 선경이거든!”

“그야 진세(塵世) 아닌가! ……자 그는 그러라 하고 오래간만에 나가 보지 않으려나? 쓰레기통 속 아닌 선경, 지상낙원을 구경시켜 줌세.”

하고 박 영감은 술을 먹으러 가자고 권한다.

“그만두겠네. 지금 오다가 다리가 하두 아프기에 빈대떡집에 들어가서 술 석 잔을 마시고 보니 내 세상은 게 있는 듯싶데.”

“하하하 영감두 인제는 늙었군! 빈대떡집에 들어가다니.”

박종렬 영감의 눈에는 늙은 친구가 가엾어 보였다.

“아닌 게 아니라 나 역시 처음에는 좀 군돈스런 생각도 들데마는 꽃 같은 색시를 데린 청년이 요기를 하고 앉았고 양복 신사가 열좌한 것을 보니 조선 사람 정도에 꼭 알맞은 그릴이요 사교장이라고 하겠데.”

“ⓑ그두 그렇죠.”

마주 앉았던 청년은 노인네들 객담만 언제까지 듣고 있을 수 없어서 한 마디 장단을 맞추고 얼른 자기의 용건을 꺼낸다.

“오늘 이렇게 뵈러 온 것은 다름 아니라, 제가 무슨 사업을 하나 시작하려는데 좀 도와주십사고 하는 것인데요…….”

“무슨 사업을 하시는지? 나 같은 사람의 힘까지 빌어야 한다는 걸 보니 신통치 않은 사업이겠구려.”

“ⓒ아니올시다. 신통한 일이기에 선생님께서 출마하여 주십사는 것 아닙니까?”

 

청년은 이 영감의 말이 겸사 비슷하면서도 자기를 훌뿌리고 면박한 것이 불쾌하건마는 지긋이 참았다.

“출마라니 아직 UN단도 오기 전에 입후보를 하란 말요?”

“영감 입후보할 야심은 있는 게로구려? 그러면 됐소!”

옆에서 빙긋이 웃고만 있던 박종렬 영감이, 무에 되었다는지 말을 가로막으며 나선다.

“별 게 아니라, 이번에 ××당 성북지구분회가 조직되는데, 이 사람이 회장의 물망에 올랐으나 될 수 있으면 영감이 나와 주었으면 좋겠다는 물론인데 나가보구려.”

알고 보니 가당치도 않은 의논이다.

“온 당치 않은 소리! 어느 당이고 간에 나 같은 사람이 정당에 무슨 아랑곳이 있단 말요?”

주인 영감은 못 들을 소리나 들은 듯이 펄쩍 뛰었다.

“ⓓ분회장이 싫으시면 고문도 좋습니다.”

이 청년은 지금 ××청년단장으로 활동하기 때문에 대단히 바빠서 분회장을 겸무할 수 없기에 김관식 영감에게 사양을 하자는 것이나 정 못하겠거든 고문으로라도 이름을 걸어 달라는 것이다. 그것도 물론 성북 지구에서 살고 있으니 이러한 청을 하는 것이라 한다.

 

“내게는 과분한 천망이나 나는 원체 정치를 모르고 그런 데 취미가 없는 사람이니까 다시는 말씀도 마슈.”

김관식 영감은 이러한 이야기는 두 번도 듣기 싫었다. 그는 고사하고 이 청년이 초면에 왜 그리 주짜를 빼고 자기를 위협이나 하러 온 듯싶이 버티나 하였더니 청년단장이란 말에 인제야 알겠다고 속으로 코웃음을 쳤다.

“갑갑한 방 속에 들어앉았느니 소일 삼아 나가보게그려. 사람은 정치적 동물이라지 않나. 정치 운동하는 사람이 따루 있던가?”

박종렬 영감이 또 권해 본다.

“이 방이 영감 눈에는 갑갑해 보이겠지만 내게는 선경이라니까! 죽은 뒤의 명정감도 소용없고 술 석 잔과 이 방 한 간이면 부족할 게 없어! 허허허.”

“그렇게 말씀하면 너무나 퇴영적 퇴패적이 아닙니까? ⓔ 삼천만이 모두 선생 같은 생각이면야 큰일 아닙니까?”

청년이 쇠하여 보인다.

“응, 퇴패, 퇴영은 안 되겠지만 석 잔 술과 한 간 방에 숨으려는 것을 퇴패, 퇴영이라면, 서른 잔 술과 열 간 방에 향락과 권세를 차지해 보겠다는 것은 구국애민의 정치도(政治道)란 거랍디까?”

- 염상섭, ｢효풍｣

＊모리: 도덕과 의리는 생각하지 않고 오직 부정한 이익만을 꾀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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