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담의 ‘패놉티콘’(일망 감시 감옥)의 원리는 잘 알려져 있다. 주위는 원형의 건물이 에워싸고 있고, 그 중심에는 탑이 하나 있다. 탑에는 원형 건물의 안쪽으로 향해 있는 여러 개의 큰 창문들이 뚫려 있다. 주위의 건물은 독방들로 나누어져 있고, 독방 하나하나는 건물의 앞면에서부터 뒷면까지 내부의 공간을 모두 차지한다. <중략>
이러한 형태는 무엇보다 저 감금 시설 속에 밀집해 있으면서 혼잡하고 소란스러운 대중의 모습을 보지 않게 해 준다. 사람들은 저마다 감시자가 정면으로 바라볼 수 있는 독방 안에 감금된 채 자기 자리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양쪽의 벽은 수감자가 동료들과 접촉하는 것을 차단하는 역할을 한다. 감시자는 수감자를 볼 수 있지만, 수감자가 감시자를 볼 수는 없다. 그는 정보의 대상이 되기는 해도, 정보 소통의 주체가 되지는 못한다. 중앙 탑과 마주하도록 방을 배치함으로써 일종의 축을 형성하는 ⓐ가시성이 강요되는 반면, 원형 건물의 분할된 부분들과 완전히 분리된 독방들은 옆방으로부터의 ⓑ비가시성을 의미하게 된다.
이러한 비가시성은 질서를 보장해 준다. 수감자가 죄인이라면 음모나, 집단 탈옥의 시도, 출소 후의 새로운 범죄 계획 등 상호 간의 나쁜 영향의 염려가 없다. 병자라면 전염의 위험이 없고, 광인이라면 상호 폭력을 행사할 위험도 없다. 어린이라면 남이 한 숙제를 베끼거나 시끄럽게 굴고, 수다를 떨어 주의를 산만하게 하는 짓을 방지할 수 있다. 노동자라면 구타, 절도, 공모의 위험을 막아 주고, 작업의 지연이나 불완전한 마감 작업, 우발적 사고가 발생할 부주의한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 있다. ㉠밀집한 군중들, 다양한 교환이 이루어지는 장소, 집단적 효과로서 혼합되는 개인들, 이러한 군중 형태가 소멸하고 대신 분리된 개인들의 집합이 들어선다. 간수에게는 군중 대신 숫자를 헤아릴 수 있고 통제가 가능한 개인들로 바뀐 것이고, 죄수에게는 격리되고 주시되는 고립된 상태로 대체된 것이다.
이로부터 일망 감시 감옥의 효과가 생겨난다. 감금된 자는 권력의 자동적인 기능을 보장해 주는 ㉡가시성의 지속적이고 의식적 상태로 이끌려 들어간다. 감시 작용을 중단하더라도 그 효과는 계속되며, 권력의 완성이 그 행사의 현실성을 점차 약화시킨다. 이러한 건축적 장치는 ㉢권력을 행사하는 사람과 상관없이 어떤 권력 관계를 새로 만들고 이를 유지하는 기계 장치가 된다. 요컨대 수감자는 스스로 그 상황을 유지하는 어떤 권력적 상황 속으로 편입된다.
일망 감시 감옥의 구조는 ‘봄-보임’의 결합을 분리한다. 즉, 주위를 둘러싼 원형의 건물 안에서는 아무것도 보지 못한 채 완전히 보이기만 하고 중앙부의 탑 속에서는 모든 것을 볼 수 있지만, 밖에서는 탑 안이 절대로 보이지 않는다.
이런 구조는 ㉣권력을 자동적인 것이며, 또한 비개성적인 것으로 만들기 때문에 중요하다. 그 권력의 근원은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이 구조에 있다. 누가 권력을 행사하느냐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우연히 걸려든 그 누구라도 이 구조를 활용할 수 있다. 따라서 그 관리 책임자가 부재중이라면 그의 가족이나 측근, 친구, 방문객, 그리고 하인조차도 그 일을 대신할 수 있다. 마찬가지로 이 구조를 활용하는 동기가 무엇이건 상관이 없다. 그것이 경솔한 사람의 호기심이건 어린아이의 장난이건, 어느 철학자의 지적 호기심이건, 아니면 몰래 살피거나 처벌하는 데에서 기쁨을 찾는 인간의 짓궂은 장난이건 말이다. 이러한 익명의 일시적인 관찰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수감자는 간파될 위험과 관찰된다는 불안감을 더 많이 느낀다. ⓒ‘일망 감시 감옥’은 아주 다양한 욕망에서 권력의 동질적 효과를 만들어 내는 경이로운 시설이다.
벤담은 일망 감시 감옥이 그렇게 섬세한 것일 수 있다는 사실에 경탄했다. 쇠창살이나 쇠사슬, 그리고 묵직한 자물쇠도 필요 없다. 단지 구분을 명확히 하고, 출입구를 잘 배치하기만 하면 된다. 성과 요새 형태의 건축으로 된, 육중한 옛날 ‘감옥’ 대신에 단순하고, 경제적인 기하학적 구도의 빈틈없는 감옥이 들어선 것이다.
권력의 효과와 강제력은 말하자면 다른 쪽, 즉 감시자 쪽으로도 옮겨 가게 되었다. 자신이 감시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는 자는 스스로 권력의 강제력을 떠맡아서 자발적으로 자기 자신에게 작용되도록 한다. 그는 권력관계를 내면화하여 일인이역을 하는 셈이다. 그는 스스로 예속화된다.
바로 이런 사실 때문에 외부의 권력은 물리적인 무게를 덜 수 있고 점차 그 형태가 희미해진다. 권력이 한계 지점에 가까워질수록 그 효과는 더 지속적이고 깊어지며, 단 한 번에 획득되고, 끊임없이 갱신된다. 즉 권력은 모든 물리적인 충돌을 피하고, 늘 앞서서 승리한다.
‘일망 감시 감옥’의 기능은 일반화될 수 있는 모델이다. 이 시설은 인간의 일상생활과 권력의 관계를 규정하는 하나의 방식과 같다. 일망 감시 감옥의 구조는 오늘날에도 여러 가지 변형을 만들어 내고 있다. 이는 2세기 동안 그 시설에 대한 상상의 강렬함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말해 준다. 그러나 이 시설을 일종의 몽상적인 건물로 이해해서는 안 된다. 그것은 ㉤이상적 형태로 압축된 어떤 권력 체제의 구조이고, 어떤 저항도 받지 않고 행해지는 그 기능이야말로 단순화된 건축적이고 시각적인 체계이다. 사실 그것은 보편적으로 활용할 수 있고, 또한 그렇게 해야 하는 정치 기술의 형태다.
이것은 정해진 공간에서 일정한 수의 인간을 감시해야 하는 모든 시설에 적용할 수 있다. 이 구조가 적용되는 모든 것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권력을 완전하게 행사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선 그 구조는 권력 행사 대상의 수효를 증가시키면서 권력을 행사하는 측의 수효는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완력을 쓰지 않고도 자발적으로 소리 없이 운용되면서, 그 효과가 서로 연쇄적으로 나타나는 하나의 체제를 구성할 수 있다. 또한, 건물과 기하학적 배치 외에 다른 어떤 물리적 수단을 쓰지 않으면서도 개인에게 그 구조가 직접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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