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박일호, <세잔과 입체파>-대비 문제(2015 개정 신사고 독서)

 

 

 

※ 다음 글을 읽고, 물음에 답하시오.

 

인상주의자들은 대상에 대해 시각적으로 느낀 인상에 충실하고자 했으며 기하학적 원근법이나 명암법과 같은 전통적인 규칙에 구애되지 않으려 했다. 특히 그들은 빛이 변화함에 따라 그 빛을 받는 자연 속 대상들의 표면에서 일어나는 색 변화를 화폭에 나타내고자 하였다. 이에 따라 인상주의자들은 윤곽선이나 형태 및 입체감보다는 색채의 효과를 중시했으며, 외부에서 관찰한 자연의 순간순간의 모습과 그것에 대한 시각적 인상을 현장에서 화폭에 담아냈다. 인상주의의 대표적 화가인 ㉮모네가 ‘잡을 수 없는 신비한 자연’에 대한 한탄을 유언으로 남기고 죽은 것은 이 때문이다. 그런데 세잔은 모네의 이 말에 회의를 느끼고, 인상주의자들이 추구했던 ‘눈으로만 파악한 감각 세계’의 혼란스러운 모습에 정신적인 구성과 지적인 질서를 부여하고자 했다.

 

 

㉯세잔은 대상 표면의 색이 변한다 하더라도 입체적인 구조는 변하지 않는다는 생각에서 감각적 경험과 지적 원리가 결합된 미술을 만들어 냄으로써 견고하고 영구적인 모습으로 물체들을 나타내고자 하였다. 그림이란 선·면·색의 구성으로 이루어진 조형 세계라는 관점에서 지적이며 합리주의적인 세계를 만들어 내려 한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세잔은 “모든 자연 속의 대상은 원통, 원뿔, 구로 환원하여 나타내야 한다.”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으며, 그 나름대로의 독특한 공간 구성법을 실현하였다.

 

그의 그림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은 인상주의 그림들에 비해 무겁고 단단해 보인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사용하던 잘게 쪼갠 색 점들이 아닌, 넓게 바른 색 면들로 입체적인 형태를 나타냈기 때문이다. 또한 전체적으로 안정감이 있고 화면이 꽉 찬 느낌을 준다. 그것은 세잔이 사과, 오렌지, 꽃병, 식탁보 등의 물체를 원통, 원뿔, 구 같은 기하학적 형태를 염두에 두고 그리면서 공간을 구성했기 때문이다. 한편 그림 안에서 이상하게 왜곡된 표현들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꽃병은 살짝 기울어져 있고, 꽃병 왼쪽의 오렌지를 담은 접시는 꽃병이나 식탁보와의 관계에서 볼 때 홀로 떠 있는 듯이 보인다. 그 밑에 있는 사과를 담은 접시는 비스듬히 세워져 있어 금방이라도 사과들이 굴러떨어질 것만 같다. 그리고 식탁보 밑 왼쪽 탁자 면과 오른쪽 탁자 면의 높이가 맞지 않아 마치 두 개의 탁자가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이상한 점들은 모두 종전의 원근법적 그림들이 지켜 온 규칙으로부터 벗어났기 때문이다. 세잔은 원근법적 그림에서처럼 어떤 하나의 대상에 중심을 두고 다른 대상들을 통일하여 나타내지 않았다. 대신 각각의 물체를 충실하게 묘사해서 전체적으로 견고하고 안정감 있으며 꽉 찬 느낌을 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이 그림에서는 어떤 하나의 물체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원근법이 우리의 시점과 시선을 중심으로 화면 안의 통일성을 나타내는 방법이라면, 세잔의 그림은 대상이 되는 물체를 중심으로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을 사용했다. 세잔은 르네상스 이래 400년 이상 지켜 온 인간 시점 중심의 원근법적 조형 세계에 의문을 가졌고, 그것을 대상 물체 중심의 조형 세계로 변화시킨 것이다.

 

 

세잔의 그림이 견고하고 꽉 차 보이는 또 다른 이유는 소묘와 색채가 상호 보완하여 조화를 이루도록 했기 때문이다. 즉 형태에 의해 색이 더 견고해지고, 색에 의해 형태가 더 풍부해지도록 구성했다는 의미이다.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에서는 색의 명암이나 색조 간의 조화 및 대조를 통해 사과와 오렌지의 양감을 표현했다. 또한 따뜻한 느낌의 황갈색 계통이 도드라져 보이고, 차가운 느낌의 청록색 계통이 움츠러드는 듯 보인다는 점도 이용하여 양감을 나타났다.

 

세잔은 황갈색 계통의 색과 청록색 계통의 색을 사용하여 그림 속 배경의 굴곡과 거리감을 만들어 내기도 했는데, 이러한 색 사용법은 「큰 소나무가 있는 생트 빅투아르산」에서 잘 나타난다. 이 그림은 왼쪽 아래의 큰 소나무에서 출발하여 멀리 산을 향해 뻗은 나뭇가지를 따라 그림 속으로 깊이 빨려 들어갈 수 있도록 구성되었다. 그리고 앞으로 나오는 느낌을 주는 황색과 뒤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는 청색을 번갈아 교차하여 풍경의 원근 관계를 나타내고 있다. 또한 색의 띠나 조각들을 반복적으로 교차하여 굴곡진 느낌을 만들어 냈으며, 화면 중앙에 있는 산의 모습을 원뿔 형태를 바탕으로 나타내어 색의 조화와 형태의 명확성을 동시에 표현했다.

 

 

이와 같은 그림들을 통해 세잔은 인상주의자들의 그림에서 부족했던 견고한 형태감을 되살려 놓고 있으며, 그림 속의 형식적 구조에도 주목하고 있다. 인상주의로부터 시작된 그림의 방법에 대한 관심을 지적이고 기하학적인 조형 원리를 바탕으로 한 형식 구성으로 돌려놓은 것이다. 즉 눈에만 의존하던 인상주의의 감각적인 미술과는 달리 그의 그림은 사유를 통한 물체의 이해와 표현이라 할 수 있다. 세잔의 이러한 방법은 이후 기하학적이고 합리주의적인 미술 경향들로 이어지는데, 그 대표적 예가 입체파이다.

 

세잔이 인상주의의 감각적 경험을 지적인 원리와 조화시키려 했다면, 입체파는 지적인 원리를 보다 더 강조했다. 물체의 형식적 구조에 관심을 집중하여 세잔의 물체 중심적인 생각을 한층 더 심화한 것이다. 입체파 화가들은 그림의 대상인 물체를 전후좌우 360도 각도에서 바라보고, 그 모습을 기하학적인 형태로 분석해서 해체한 후 화면 위에 재구성하는 방식을 사용했다. 하나의 시점에서 바라본 모습으로는 물체의 조형적 형태를 완전하게 나타낼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입체파는 같은 시기의 야수파나 표현주의가 인간의 내면세계에 관심을 보인 것과는 달리, 대상 물체에 대한 조형적 탐구와 그것을 통한 화면 구성에 관심을 보였다고 할 수 있다.

 

 

입체파 화가 브라크의 Ⓐ「기타를 치는 여인」을 보자. 기하학적인 형태들이 겹쳐 있어 복잡하고 기묘해 보인다. 처음 이 그림을 보았다면 도대체 ‘무엇’을 나타내려 한 것인지 당혹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중요한 것은 그림의 대상이 무엇인지가 아니다. 그보다 어떻게 화면을 구성했는지에 주목해야 한다. 즉 미술을 바라보던 전통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는 것이다.

 

「기타를 치는 여인」에서 알 수 있듯이 입체파 그림에서는 물체의 흔적들이 기하학적인 화면과 평면적 구성 속에 해체되어 버리면서, 세잔의 그림에서 볼 수 있었던 물체의 견고함마저 사라졌다. 세잔이 감각적인 사실 묘사에 바탕을 두고 기하학적인 요소들을 결합하려 했다면, 입체파는 감각적인 면보다 기하학적인 화면 구성을 더 강조한 것이다. 피카소의 작품 「앉아 있는 사람」의 경우에도 그림 속 인물이 형체를 알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분석·해체되어 있어, 마치 기하학적 형태들로 만든 사람 모형처럼 보인다. 언뜻 보기에는 전혀 의미가 없는 형태들을 뒤죽박죽으로 섞어 놓은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림 생략>

▲ 조르주 브라크, 「기타를 치는 여인」, 1912년 작.

 

입체파 그림에서는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하느냐에 따라 화면의 공간 구성이나 구성 요소들의 상대적인 위치가 달라진다. 이것은 관찰하는 대상을 완전하게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후좌우 등의 모든 시점에서 본 형태와 색채들을 종합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며, 관찰자의 위치를 고정하고 한 시점으로만 대상을 파악한 1점 원근법을 부정하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원근법의 방식과 다르게 대상을 관찰하고 파악한다. 우리의 눈은 전후좌우로 끊임없이 움직이면서 다양한 시점과 시각으로 물체와 공간을 파악하고, 그 전체의 모습을 구성해 낸다. 입체파의 방식은 이처럼 우리가 실제로 대상을 관찰하는 방식에 따라 다시 점으로 물체를 나타내고 공간을 구성하려 한 것이다.

 

 

세잔과 입체파의 작품들은 기존과 다른, 미술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담고 있다. 우리도 이들처럼 그림을 새로운 관점에서 본다면 어떤 결과를 얻을 수 있을까? 가령 지금까지 ‘무엇’을 그렸는가의 관점에서 주로 그림을 감상해 왔다면, 앞으로는 ‘어떻게’ 화면을 구성해 내고 있는가의 관점에서 그림을 감상해 볼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새로운 관점을 지니면 전혀 다른 미술 세계를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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