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이 한국에 기대수명 추월당한 이유
강석기의 과학에세이 251
지난해 이맘 때 의학저널 ‘랜싯’에는 놀라운 연구결과가 실렸다. 2030년 태어날 사람의 기대수명이 90살이 넘는 나라가 나온다는 것으로 그 나라는 바로 한국이라는 것이다.
엄밀히 말하면 한국인이 아니라 한국 여성이 그렇다는 것이지만 아무튼 한 세대 전만 해도 21세기 안에 기대수명이 90을 넘지 못할 것으로 봤는데 이 예측을 가볍게 깰 것이라는 파격적인 결과다.
영국 임페리얼칼리지와 세계보건기구(WHO) 등 공동연구자들이 주로 선진국인 35개국의 기대수명 변화 추이를 통계적으로 분석한 결과다. 2010년 태어난 우리나라 여성의 기대수명은 84세로 1위인 일본에 2년 뒤졌지만 지금 추세대로 기대수명 증가폭이 이어진다면 2030년에는 91세로 단연 1위로 올라선다는 말이다.
여성보다는 못하지만 우리나라 남성의 기대수명도 2010년 77세(19위)에서 꽤 늘어나 2030년에는 84세로 호주, 스위스 등과 함께 1위 그룹을 형성할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각국의 기대수명 변화 도표를 보면 우리나라와 미국의대 대조가 눈에 띤다.
미국의 기대수명은 2010년 이미 한국에 뒤져있는데 20년 뒤인 2030년에는 그 격차가 훨씬 더 벌어진다. 즉 이 기간 동안 미국의 기대수명은 별로 늘어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의 최대수명을 120살로 추정하고 있다. 따라서 기대수명이 최대수명에 가까울수록 증가폭이 작고 멀수록 커야 할 것 같은데 정반대 현상이 일어나고 있으니 어찌된 영문일까.
지난해 학술지 ‘랜싯’에는 지난 수십 년의 기대수명 변화 추이를 바탕으로 2030년 기대수명을 예측한 논문이 실렸다.
이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남녀 모두 35개국에서 1위에 오르고 특히 여성은 90세가 넘을 것으로 보인다.
반면 미국은 지금(2010년)도 짧은 편이고 2030년에도 크게 늘어나지는 않을 전망이다. ⓒ 네이처
비만 증가로 기대수명 증가폭 1년 줄어
학술지 ‘미국립과학원회보’ 1월 30일자에는 미국의 기대수명 정체의 주요원인이 비만이라는 분석결과가 실렸다.
즉 지난 한 세대 동안 미국의 비만 경향이 심화되면서 2011년 기준 40세인 사람의 기대수명을 1년 가까이 깎아먹는 효과를 냈다는 것이다.
펜실베이니아대 등 미국의 공동연구자들은 1988년에서 2011년 사이 40~84세인 미국인의 사망률 변화를 다른 15개국(아쉽게도 한국은 포함되지 않았다)의 데이터와 비교했다. 참고로 기대수명은 해당연도의 연령별 사망률에 기초해 산출되므로 이 결과로 기대수명을 알 수 있다.
그 결과 이 나이대의 미국인 사망률은 매년 1.53% 감소해 전체 16개 나라에서 감소폭이 가장 작았다. 감소폭이 가장 큰 나라는 호주로 매년 2.72% 감소했고 미국을 뺀 15개 나라의 평균 감소폭은 2.21%였다.
연구자들은 이 기간 동안 미국인의 비만도 변화에 주목했다. 즉 조사기간 동안 대상자들이 가장 살이 많이 찐 상태, 즉 최대 체질량지수(Max BMI)를 조사했다.
그 결과 이 기간 동안 비만인 적이 있었던 사람(몸무게(kg)를 키(m)의 제곱으로 나눈 BMI 값이 30 이상)이 1988년에는 40%였는데 2011년에는 52%로 늘었다. 반면 이 기간 동안 흡연을 한 적이 있는 사람의 비율은 60%에서 50%로 줄었다.
연구자들은 BMI와 흡연 여부에 따른 사망률을 분석해 두 특성이 사망률에 미치는 영향을 추측하는 시뮬레이션 식을 만들었다.
그 결과 비만의 증가가 사망률 감소폭을 0.5~0.6% 둔화시켰다는 결론을 얻었다. 이는 흡연율 감소로 인한 긍정적 효과의 두 배나 되는 수치다.
이 모형에 따르면 미국인 40세의 기대수명은 1988년 77.6세에서 2011년 81.4세로 3.8년이 는다. 만일 이 기간 동안 비만도에 변화가 없었다면 2011년 40세의 기대수명은 82.3세로 4.7년이 더 는다.
즉 비만도가 늘어나면서 40세의 기대수명 증가폭이 0.9년 줄어든 것이다. 한편 2011년 40세의 실제 기대수명은 80.6세로 모형보다 0.8세 짧다.
2011년 한 해 동안 40~84세 미국인 가운데 159만 여 명이 사망했는데, 이 가운데 11.7%인 18만6000명이 비만 증가로 인해 추가로 사망한 것으로 추정된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1988년에서 2011년 사이 고혈압과 고지혈증, 이상지질혈증 등 비만과 관련된 만성질환에 대해 많은 약물이 개발됐음을 상기시켰다. 즉 이런 약물의 도움이 없었다면 비만의 부정적인 효과는 훨씬 더 컸을 거라는 말이다.
세계 비만 지도로 왼쪽은 성인 남성, 오른쪽은 성인 여성이다.
우리나라는 BMI 30 기준 비만인구가 5% 미만인 반면 미국은 남성이 30%, 여성이 35%를 넘는다. ⓒ 뉴잉글랜드의학저널
한국도 비만과 흡연 지표 나빠지고 있어
사실 반세기 전인 1960년대만 해도 우리나라의 기대수명은 채 60세가 안 돼 이미 70세에 이른 미국에 비교가 되지 않았다.
전후 궁핍과 낮은 의료수준의 결과인데 그 뒤 경제발전과 국가보건체계 확립으로 기대수명이 빠르게 늘면서 2003년 77.25세로 미국(77.04세)을 넘어섰고 그 뒤 격차를 더 벌이고 있다.
기대수명과 소득수준의 관계를 보면 소득이 아주 낮을 때는 소득 증가에 비례해 기대수명이 늘지만 소득이 어느 수준에 이르면 별 관계가 없다. 우리나라가 15년 전 미국과 대등해진 이유다.
대신 기대소득은 해마다 꾸준히 늘어나고 있는데 이는 의학의 발전에 따른 결과로 보인다.
따라서 2003년 이후 한국과 미국의 차이는 생활습관의 차이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비빔밥으로 대표되는 우리나라 음식이 미국의 식자층에서는 건강식으로 인식되고 한국을 찾은 미국인들이 가장 놀라는 것 가운데 하나가 한국인들이 날씬하다는 점이다.
그러나 최근 우리나라도 조짐이 좋지 않다. 지난해 국민건강보험공단이 발표한 2016년 건강검진통계연보에 따르면 담뱃값 대폭 인상으로 떨어졌던 성인 흡연율이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고 비만율(BMI 25 이상)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특히 30대와 40대 남성의 경우 흡연율은 각각 46.3, 46.5%에 이르고 비만율도 각각 46, 44.8%나 된다.
미국의 경우 지난 2016년 기대수명이 78.8세로 2015년의 78.9세보다 오히려 줄어들어 충격을 줬다.
만일 이 추세가 이어진다면 지난해 ‘랜싯’의 논문에서 미국의 1960~2013년의 기대수명 추이를 바탕으로 예상한 2030년 기대수명조차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참고로 우리나라의 경우 1985~2014년 자료를 바탕으로 예상한 것이다.
오늘날 미국이 처한 보건위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우리는 그 전철을 밟지 않아야겠다.
글_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출처_ 사이언스올 사이언스타임즈
뮤지컬 '캣츠'의 고양이들, 어디까지 알고 있니? '젤리클 묘명 사전' (0) | 2018.02.05 |
---|---|
4차 산업혁명 성공하려면? (0) | 2018.02.05 |
진로 아닌 진학만 가르치는 학교.. 미래 희망까지 '판박이' (0) | 2018.02.02 |
“사격으로 집중력·승부욕 향상… 성적도 쑥쑥 올랐어요" (0) | 2018.01.31 |
기획부터 실천까지 학생이 주도 ‘국내 첫 마을학교’ (0) | 2018.01.3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