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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문화를 볼 때 우리 민족은 성(性)에 대단히 개방적이다

사회, 문화 정보

by 배추왕 2018. 5. 28. 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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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전, 미술관에선 어떤 전시가 열리고 있었을까. 40년 전, 무대에는 어떤 작품이 올랐을까. 20년 전, 한국을 방문한 해외 유명 아티스트는 누가 있었을까. 1920년부터 1999년까지 ‘이날’ 옛날 신문을 통해 과거 문화계 소식을 전해드립니다.


■역사의 속곳 걷어올린 한국의 성 풍속도


1998년 5월 29일 경향신문 15면.


한국은 예로부터 성 풍속사 연구의 황무지라 평가받았습니다. 건강한 성을 진지하게 모색하는 일이 드물었고, 보수적인 중세의 논리가 여전히 유지되었기 때문인데요. 1998년 새로운 도전의 첫 삽을 뜬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미술로 본 한국의 에로티시즘>을 펴낸 전남대 이태호 교수입니다. 그는 암각화에서부터 청동기 나신 인물상, 신라 토우와 조선 후기 풍속화에 이르기까지 통사적으로 우리 미술에 녹아있는 성 풍속사를 이야기했는데요. 이태호 교수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우리의 춘화는 은근한 관능미를 담았지만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포르노적 누드화만 판치게 되었다고 합니다. "민중들의 성 의식과 문화는 우리 예술사의 미의식을 형성하는 근간이며, 우리 문화 전통에서 성은 생각보다 대단히 개방적이었다"는 그의 말이 인상 깊은데요. 한 가지 재밌는 사실은, 책에는 총 200여 장의 '야한 사진'이 수록되었으나 소위 '잿밥'에 더 관심이 많은 이들을 염려해 사진을 모두 흑백으로 처리했다고 하네요. 


■우리 문화산업 '주춧돌' 쌓기 괴짜


1998년 5월 29일 경향신문 22면.


"한 우물만 파는 사람이 전문가라고요? 천만에요. 앞으로 한 우물만 파서는 출구가 보이지 않습니다. 우물은 물이 나올 때까지만 파면됩니다. 여러 개의 우물을 파서 그것을 하나의 물줄기로 통하게 하는 작업을 해야죠. 21세기 문화는 멀티플 한 사고를 가진 사람들이 주도할 것입니다." 요즘 모두가 원하는 통섭, 융합형 인재를 설명하는 듯한 이 말은 무려 지금으로부터 20년 전, 멀티캐릭터 아티스트 강우현 씨의 입에서 나온 발언인데요. 그림동화작가, 일러스트레이터, 컴퓨터그래픽디자이너, 서예가 등 다양한 직업을 갖고 있는 그는 은행 CI 제작부터 기업의 로고와 캐릭터, 동화책 제작까지 다양한 사업에 뛰어든 능력자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1998년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51회 칸 영화제의 포스터를 제작해 달러를 벌어들인 인물이기도 한데요. 장르의 벽에 굴하지 않고 다양한 시도를 멈추지 않은 아티스트의 모습이 인상적입니다. 


올댓아트 인턴 에디터 최효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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