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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 소리꾼의 목소리로 읽은 판소리, 어떤 느낌일까

사회, 문화 정보

by 배추왕 2018. 9. 7. 09: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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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야흐로 여성 소리꾼의 시대

글|장경진·공연칼럼니스트

과장되고, 지루하고, 재미없다. 일반적으로 판소리에 대한 젊은 한국인의 시각은 여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 생각을 송두리째 바꿔놓은 사람이 바로 이자람이다. 그는 2008년 뚱뚱하다고 괄시 받는 순덕을 주인공으로 한 <사천가> 시작으로, 전통이라는 단어에 갇혀 있던 판소리를 새로운 무대로 끌어올렸다. 브레히트(Brecht)의 희곡은 물론, 한국과 콜롬비아의 단편소설, 프랑스의 동화 등 시대와 나라를 초월한 이야기는 '이자람 표 판소리'가 되었다.


판소리 <이방인의 노래> 무대에 오른 여성소리꾼 이자람.|판소리만들기자


그의 판소리에는 일렉트릭 기타나 건반이 자주 등장한다. ‘판소리=한(恨)이라는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이들이라면 당황스러운 한편 익숙한 소리로 반가움을 느낄지도 모른다. 본인이 아마도이자람밴드 멤버인 그는 소리꾼이 살아가며 들어온 음악이 판소리에 반영되는 것은 당연하다고 설명한다. 사람이 많은 곳이라면 어디든 판을 벌렸던 판소리라는 장르의 역사와 특성과도 부합하는 셈이다. 덕분에 장르의 스펙트럼은 넓어지기 시작했고, 이자람의 행보를 쫓으며 새롭게 판소리의 매력을 발견한 관객도 많아졌다.
 
최근 정동극장에서는 셰익스피어의 <오셀로>를 판소리로 새롭게 만들어 선보이는 중이다. 셰익스피어는 사후 400년이 지나도 여전히 사랑받는 작가지만, 그가 활동하던 당시 여성은 무대에 설 수 없었다. 희곡 속 수많은 여성 캐릭터는 남성 배우들에 의해 그려졌고, '햄릿'과 같이 다채로운 고민과 성격을 가진 인물들은 모두 남성이었다. 그중 타인의 거짓말에 속아 아내의 외도를 의심하다 살인에 이른다는 내용의 <오셀로>는 어떤 작품보다도 더 여성의 목소리가 배제되어 있다.


<판소리 오셀로>의 여성 소리꾼 박인혜.|정동극장


원작에 충실한 <판소리 오셀로>는 외도를 의심받던 '데스데모나'의 심정을 애써 창작해내지 않는다. 다만 이 작품의 소리꾼이 여성이라는 것이 많은 것을 바꾸어 놓는다. '오셀로' 장군의 부관이 되고자 했던 '이아고'는 인간의 질투와 욕망을 자극해 자신이 원하는 바를 기어이 얻어내는 인물이다. 그는 <오셀로>의 진짜 주인공이자,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수많은 캐릭터 중에서도 배우들이 탐내는 인물 중 하나이다.

판소리는 한 명의 소리꾼이 극에 등장하는 모든 인물을 다양한 방식으로 연기해내는 매체이다. 여성 배우에게는 잘 주어지지 않는 간악한 캐릭터를 소리꾼 박인혜가 맛깔나게 보여주는 순간, 관객은 전복의 쾌감을 느낀다. 게다가 <판소리 오셀로>는 조선시대 '먼 데서 온 이야기'를 들려주는 기생 '설비'를 화자로 설정한다. 그는 제3자의 눈으로 감상을 덧붙이고, 특히 여성의 목소리가 사라진 책을 읽으며 느낀 묘한 감정을 숨기지 않는다.


<추물/살인> 무대를 선보이는 여성 소리꾼 이승희.|두산아트센터


이자람이 만든 <사천가> <추물/살인>, <여보세요>에 참여했던 또 다른 여성 소리꾼 이승희도 <동초제 춘향가-몽중인>으로 자기만의 판소리에 도전한다. 이승희는 '춘향'이 꿈에서만 그릴 수 있었던 미래와 그의 솔직한 내면을 통해 살아 숨 쉬는 춘향을 발견했다고 한다.

1인극 판소리는 소리꾼의 현재와 가치관이 가장 잘 드러나는 매체이다. 여성 소리꾼들이 여성의 목소리에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판소리는 낯설고, 창작 판소리는 더 낯설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자신의 목소리를 크고 높게 내는 여성들이 바로 여기에 있다.


<판소리 오셀로> 트레일러.|정동극장


정동극장 창작ing 시리즈
<판소리 오셀로>

2018.08.25 ~ 2018.09.22
서울 정동극장
공연시간 80분
R석 4만원·S석 3만원
8세 이상 관람 가능

[출처] 올댓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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