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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들은 모르는 무대 뒤 배우의 모습? 백스테이지 드러낸 코미디 연극

사회, 문화 정보

by 배추왕 2018. 11. 27.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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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스테이지 스토리의 즐거움

글|이수진·공연 칼럼니스트

무대 뒤의 이야기는 항상 흥미롭다. 현재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는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는 싱어롱 특별 상영회를 개최했지만, 관객들의 목마름을 채우기는 역부족일 것이다. 유튜브를 통해 못 다 들었던 노래를 듣고, 멤버들의 옛 인터뷰를 뒤져보고, 비하인드스토리를 찾아 나서는 것도 결국은 백스테이지 스토리에 대한 목마름 때문이다. 무대 위의 배우나 밴드, 아이돌 등이 보여주는 화려한 모습 뒤에 숨겨진 그들의 진짜모습, 혹은 진짜라고 믿고 싶은 모습에 대한 갈증 때문이다.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왼쪽)와 <오페라의 유령> 공연 장면.|CJ E&M, us.thephantomoftheopera.com


연극이나 뮤지컬에서도 백스테이지 스토리는 항상 인기 있는 소재다. 대표적으로 배우들이 무대 뒤에서 복닥거리며 드라마가 전개되는 <브로드웨이 42번가>, 극중극과 현실 배우들의 상황을 절묘하게 엮은 <키스 미 케이트>, 잔혹하기까지 한 오디션 장면을 사실에 가깝게 보여주는 <코러스라인> 등이 있다. 1930년대 경제 공황기 엔터테이너 가족의 이야기를 다룬 <Gypsy>와 나치 치하 베를린 카바레의 주인공과의 사랑 이야기를 담은 <Cabaret>도 백스테이지 스토리이다. 이견 없이 가장 유명한 백스테이지 뮤지컬은 <오페라의 유령>이. 얼마 전에 세상을 떠난 미국의 극작가 닐 사이먼도 자전적인 내용을 반영한 백스테이지 스토리 연극 <Laughter on the 23rd Floor(23층의 폭소)>를 썼다.
 
백스테이지 스토리 중에서도 매우 정교하게 만들어진 코미디 작품이라면 연극 <노이즈 오프>를 꼽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도 공연된 <노이즈 오프>는 제목부터 역설적이다. '음소거'를 뜻하는 제목인 반면 무대 위는 비명과 슬랩스틱이 난무하는 난장판이기 때문이다. 이 작품의 줄거리를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섞여있기 때문이다.


2012년 국내에서 공연된 연극 <노이즈 오프>의 콘셉트 사진.|(주)적도


중년의 연출가는 매력적인 여자 주인공과 불륜에 빠져 있고, 이 여자 주인공은 연기를 못한다는 험담을 듣는 처지이지만 정작 본인은 모르는 일이다. 연극은 리허설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연출가가 통제력을 잃기 시작하면서 배우들은 서로의 친목과 반목을 무대 위에서 드러내며 싸우기 시작하고, 결국에는 무대를 엉망으로 만든다. 가정부 역을 맡은 배우가 작품이 시작될 때 들고 들어오는 정어리는 온 무대를 돌아다니며 여러 배우를 환장하게 만들고, 누구도 이 작품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어찌 됐든 웃긴 코미디로 마침내 막을 내린다.

이 작품은 마지막까지 치밀하게 계산된 한 줄 한 줄의 대사와 동선으로 무대 뒤와 전면을 번갈아가며 전환하며 관객들의 혼을 쏙 빼놓는다. 비극보다 코미디가 어렵다는 말이 엄살이 아니라는 사실을 이 작품이 증명한다. 모든 슬랩스틱은 정교하게 계산되어 있고 무대 위의 상황에서는 아무렇게나 뱉는 대사들이지만, 그중 하나라도 어긋나면 정어리가 사라져버린다! 미친 듯이 웃다 보면 어느새 연극이 끝나는데, 정말이지 이 작품 속의 작품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해지지만 영원히 알 수가 없다.


2015년 <노이즈 오프> 브로드웨이 공연 장면.|Joan Marcus


연극 <노이즈 오프>는 진지하기 짝이 없는 희곡 <코펜하겐>의 작가 마이클 프레인의 작품이고, 그의 실제 경험에서 나온 작품이다. 프레인이 첫 연극을 올릴 때 백스테이지에서 목격했던 연극의 뒷모습에는 우아함이라고는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배우들이 쉴 새 없이 드나들며 자신의 큐를 지키기 위해 극 중의 배역과는 담을 쌓은 얼굴을 보여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고 우아하지는 않았을지 몰라도 그 모습은 그 모습대로 날것 그대로의 진지함이 있었고, 진지하면 진지할수록 더욱 웃겨 보였다. 
 
현재 공연 중인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노이즈 오프><Laughter on the 23rd Floor>처럼 정교하게 잘 짜이거나 특별한 풍자가 숨겨진 작품은 아니다. 백스테이지를 다룬 대부분의 작품들은 무대 뒤 모습을 보여주는 데 아주 많은 정성을 쏟지만, 이 작품은 무대 밖을 거의 벗어나지 않는다. 무대를 벗어나는 인물은 2층에서 콘솔을 담당하는 듀란듀란의 광팬 무대감독뿐이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공연 장면.|신시컴퍼니


이 작품이 재밌어지는 지점은 이 작품에 참가하는 모든 배우와 스태프들이 아마추어라는 사실이다. 이들은 작품을 무리 없이 올리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는데, 그 과정을 관객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목표다. 물론 그 들키지 않겠다는 목표가 관객의 눈에 잘 보일수록 웃음은 더 커진다. 작품 속에는 잔뜩 얼어서 등장하지만 관객의 격려를 받으면 만면에 떠오르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는 배우, 주인공이지만 대사를 전혀 외우지 못한 고참, 죽은 연기를 못하는 배우 등 다양한 코믹 담당들이 포진해 있다. 내용도 너무 간단하다. 마치 초보자를 위한 아가사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교실에 나올 법한 교외 저택의 살인사건 이야기이다.

살인사건 이야기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는 공연 시작 전부터 이미 관심 밖이다. 시체 역을 맡은 배우가 손을 밟혀 눈을 번쩍 뜨기 전부터 관객들은 이미 웃을 준비가 되어 있다. 이 작품은 제목처럼 잘못되어 가면 잘못되어 갈수록 관객들이 웃고 성공할 수 있는 작품이다. 관건은 얼마나 많이 잘못하고 얼마나 황당하게 잘못을 덮을 것인가이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공연 장면.|신시컴퍼니


2층이 붕괴되어 가는 과정이나 한순간에 무대 전체의 백스테이지까지 드러나는 장치 등은 작품의 정교함을 보여준다. 하지만 작품 전반에는 과장된 동작의 효과음을 표현하기 위한 슬랩스틱이 사용되는데, 지나치게 치고받고 때리고 기절하는 하드코어한 슬랩스틱 기반 유머가 맞지 않는 관객도 있을 수 있다.
 
<톰과 제리>의 두 캐릭터가 서로의 눈앞에서 문을 쾅 닫아 상대를 기절시키고, 망치를 던져 맞추고, 판자로 머리를 내려치고, 서로를 바닥에 패대기치는 모습을 보며 웃을 수 있는 것은 그것이 만화라는 필터를 거치기 때문이다. 하지만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속 특정 배역은 아무 보호도 없이 그저 누구라도 대체할 수 있는 배역이 되고, 기절하면 자루처럼 질질 끌려다니거나 은폐하기 급급한 인물로 취급된다. 그리고 이러한 행태를 완전하게 코미디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그들의 노고를 잘 아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공연 장면.|신시컴퍼니


이 작품은 처음부터 끝까지 의자에 기대앉아 웃기만 하면 되는 작품이다. 배역들 간 갈등과 동선의 변화를 놓치지 않아야 따라갈 수 있는 <노이즈 오프>의 정교함이나, 매카시즘에 대항하기까지 코미디언의 심경 변화를 담은 <Laughter on the 23rd Floor>과는 다르다. '무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최악의 실수' 모음집과도 같은 이 코미디 한 편이면, 앞으로 웬만한 무대 위 돌발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는 강한 관객으로 거듭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연극 <더 플레이 댓 고우즈 롱>

2018.11.02 ~ 2019.01.05
서울 세종문화회관 M씨어터
공연시간 130분 (인터미션 20분)
기본가 4만 ~ 7만 원
8세 이상 관람 가능

출연
호산,선재,이정주,손종기,고동옥,김강희,이경은,김태훈,이용범,고유나,정태건


극작가 겸 공연평론가 이수진은 

뮤지컬 '지저스 크라이스 슈퍼스타'를 본 이후 뮤지컬에 대한 호기심과 신의 존재에 대한 회의를 동시에 획득했다. 이후 한국 뮤지컬계의 고전으로 꼽히는 책 '뮤지컬 스토리'를 썼고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와 '그리스' 등을 번역했다. '콩칠팔새삼륙' '신과 함께 가라' 등의 뮤지컬을 쓰며 여전히 무대 언저리를 헤매는 중.

[출처]올댓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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