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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수출된 한국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

사회, 문화 정보

by 배추왕 2018. 2. 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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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으로 수출된 한국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 '뮤지컬 한류' 이어갈까


한국 창작 뮤지컬 <마타하리>, 일본 버전은 어떻게 바뀌었을까
글 | 장지영·공연 칼럼니스트
 
일본 도쿄에 있는 1500석 규모의 도쿄국제포럼 C홀에선 지난 2018년 23일부터 우메다예술극장의 뮤지컬 <마타하리> 공연 중이다. 1차 세계대전 당시 이중간첩으로 처형된 무희 마타하리의 삶과 사랑을 그린 이 작품은 오사카에 기반을 둔 우메다예술극장이 제작해 2018년 121~28일 오사카 공연을 마친 뒤 도쿄(~2018년 218일까지)로 온 것이다. 일본의 여성 연출가 이시마루 사치코가 연출을 맡았으며 마타하리 역에 유즈키 레온, 라두 대령 역에 사토 다카노리, 아르망 역에 히가시 게이스케 등 뮤지컬계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배우들이 출연했다. 특히 팬층이 두터운 스타 배우 가토 가즈키는 아르망과 라두 대령을 번갈아가며 소화하는 위력을 발휘했다.

이 작품은 지난해 서울에서 EMK뮤지컬컴퍼니(이하 EMK)가 공연한 동명의 한국 창작 뮤지컬을 일본 버전으로 선보인 것이다. 한국의 대형 창작 뮤지컬이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으로 선보이는 것은 지난해 도호와 호리프로가 공동제작한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두 번째다.

<마타하리> 2017년 서울 공연 사진.|EMK 제공

그동안 유럽 뮤지컬을 국내에 주로 소개해온 EMK4년간의 준비 끝에 지난 2016년 첫 창작 뮤지컬로 <마타하리> 선보였다. 작곡가 프랭크 와일드혼, 작가 아이반 멘첼, 연출가 제프 칼훈, 무대 디자이너 오필영 등이 크리에이티브팀으로 참여했다. 초연 당시 화려한 무대 세트와 마타하리의 춤 등 볼거리가 넘치지만 스토리가 약하다는 지적이 많았다. 이에 따라 지난해 재연은 영국 베테랑 연출가 스티브 레인을 투입, 1차 세계대전이라는 위험하고 참혹한 시대 배경을 강화하는 한편 드라마의 짜임새를 견고히 했다. 또한 기존 넘버들을 새롭게 배치해 음악의 완급을 조절하고 미공개 넘버들을 넣어 극에 대한 몰입감을 높였다.

우메다예술극장이 제작한 일본 버전은 EMK의 지난해 재연 버전을 바탕으로 했다. 원작의 대본과 음악만 구입하는 스몰 라이선스이기 때문에 일본 버전 <마타하리> 당연히 한국 버전과 다르다.

<마타하리> 2018년 일본 공연 사진.|우메다예술극장 제공, photograph by Takako Kishi

먼저 소박하고 상징적인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일본 버전은 뒷 배경막에 전쟁의 음울함을 상징하는 듯한 거대한 구름 아래쪽으로 전쟁으로 폭격을 맞아 부서진 건물의 그림이 그려져 있다. 여기에 장면마다 스태프들이 작은 세트를 이동시킨다.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무대 앞쪽 중간 정도에 가로로 줄들을 달아서 다양한 배경으로 활용하는 점이다. 예를 들어 장면 전환을 위한 커튼으로 사용되는가 하면 프랑스와 독일이 배경일 땐 각각 프랑스 국기와 독일 국기가 나온다. 지난해 한국 재연은 초연보다 무대가 훨씬 심플해졌지만 일본 버전에 비하면 화려한 편이었다. 덕분에 일본 버전은 한국 버전에 비해 제작비를 상당히 절감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보이지만 볼거리 면에서는 상당히 아쉬웠다. 게다가 커튼 같은 막이 줄에 매달려 이동할 때마다 차라락 차라락 소리가 나서 무대에 몰입하는 것을 방해했다.

<마타하리> 2018년 일본 공연에서 마타하리 역을 맡은 유즈키 레온|우메다예술극장 제공, photograph by Takako Kishi
하지만 일본 버전은 한국 재연 버전에서 아쉬웠던 마타하리의 춤을 부각했다. 한국 초연의 경우 물랑루즈 클럽에서 춤추는 마타하리의 모습이 돋보였지만 재연 때는 마타하리와 아르망, 라두 사이의 드라마에 치중하면서 빠졌었다. 무희들의 춤 장면이 있긴 했지만 마타하리는 거의 추지 않았다. 그러나 이번 일본 버전에서는 마타하리가 전반부와 후반부에 인상적인 독무를 보여줌으로써 무희로서의 정체성을 분명히 각인시켜준다.

공연이 끝난 뒤 만난 연출가 이시마루 사치코는 한국의 <마타하리> 초연 버전은 영상으로, 재연 버전은 서울에서 직접 봤다. 아름다운 드라마와 함께 화려한 무대가 인상적이었다면서 일본 버전을 만들면서 가장 먼저 생각한 것은 당시 유럽을 매료시킨 전설의 댄서마타하리의 매력을 관객들에게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었다. 주인공을 맡은 유즈키 레온이 춤을 위해 많은 노력한 덕분에 마타하리를 구원한 자바의 춤등이 잘 표현됐다고 생각한다 말했다.

다만 제작비 때문이겠지만 일본판 <마타하리> 무대는 지나치게 소박한 느낌이 든다. 대극장 뮤지컬이라면 으레 화려한 무대 세트를 떠올리는 한국 관객들에게는 쉽게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정도다. 이에 대해 이시마루 연출가는 한국처럼 화려한 세트는 없지만 호리오 유키오의 무대미술은 1차 대전의 비참한 분위기를 드러내는데 효과적이었다고 본다. 여기에 다양한 조명을 활용해 부족한 부분을 메웠다면서 일본판 <마타하리> 연출은 1차 대전 중에 자신의 삶과 사랑을 위해 살아남으려 애썼던 여성의 이야기라는 점에 초점을 뒀다 설명했다.
<마타하리> 2018년 일본 공연을 연출한 연출가 이시마루 사치코|우메다예술극장 제공
이시마루 연출가는 한국에도 잘 알려진 일본 연극계의 거장 니나가와 유키오(1935~2016)의 조연출을 거쳐 2008년부터 자신의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2013년 미국 뉴욕에서 열린 제14회 미드타운 인터내셔널 시어터 페스티벌에서 자신이 쓰고 연출한 창작 뮤지컬 <컬러 오브 라이프>로 뮤지컬 부문 최우수 작품상, 최우수 작사상, 최우수 연출상을 받은 바 있다. 현재 연극과 뮤지컬을 오가며 활발하게 극작과 연출을 하고 있다.

이시마루 연출가는 “<마타하리> 만들면서 자연스럽게 한국 뮤지컬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아쉽게도 그동안 <빨래> 외에 일본에서 공연된 한국 뮤지컬을 본 적이 없다면서 뮤지컬이 발전하려면 어렵더라도 창작 작업이 많이 이뤄져야 하는데, 한국에선 일본보다 훨씬 활발하게 작업이 이뤄지는 것 같다 말했다.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의 공연은 2011년 일본 엔터테인먼트 회사 쇼치쿠가 한국 버전의 <><미녀는 괴로워>를 선보이면서 본격화됐다. 이후 또 다른 엔터테인먼트 회사 아뮤즈가 전용극장을 만들어 <커피 프린스> <풍월주> <싱글즈> 등 한국 소극장 뮤지컬을 1년간 공연한다고 발표하면서 뮤지컬 한류가 일어나는 듯했다. 실제로 2013년에는 무려 한국 뮤지컬 18편이 공연되기도 했다.

하지만 스타가 나오지 않는 작품들의 잇단 흥행 실패, 지나치게 높은 티켓 가격, 도를 넘은 스타 마케팅 등이 문제가 되면서 일본에서 한국 뮤지컬의 거품도 빠졌다. 그동안 한국에 잘 알려지지 않아서 그렇지 일본에서 공연된 한국 뮤지컬 가운데 민망할 정도의 평가와 흥행 성적을 거둔 경우가 적지 않다. 아뮤즈의 한국 소극장 뮤지컬 공연 프로젝트도 참패로 끝났다.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된 한국 창작 뮤지컬 <셜록 홈즈 2>(왼쪽)와 <빨래>|도호예능&큐브, 퓨어메리 제공

그나마 일본에서 공연된 한국 뮤지컬 가운데 <사랑은 비를 타고> <빨래> <블랙 메리 포핀스> <셜록 홈즈> 1·2 등 현지 제작사가 라이선스를 구입해 제작한 작품들이 흥행과 비평 모두 좋은 성과를 거뒀다. 특히 지난해 도호와 호리프로가 공동제작한 첫 대극장 뮤지컬 <프랑켄슈타인>은 대표적이다. 현지 제작사가 팬층이 두터운 배우들을 기용하는 한편 일본 공연계 시스템에 맞게 9개월~1년간 지속적으로 홍보와 마케팅을 한 덕분이다. 앞서 대부분의 한국 뮤지컬이 제대로 된 홍보와 마케팅이 이뤄지지 않았던 것과 큰 차이가 있다. 지금도 아이돌을 기용해 3~4일 정도 도쿄나 오사카에서 짧게 소극장을 대관해 공연하는 한국 뮤지컬이 있지만 아쉽게도 현지 주류 뮤지컬 팬에겐 알려지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일본에서 라이선스 공연된 한국 창작 뮤지컬 <프랑켄슈타인>|도호&호리프로 제공

다만 이들 현지화된 작품은 적자 가능성을 최소화하기 위해 무대 세트 등을 소박하게 만들어 제작비를 아끼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프랑켄슈타인>만 하더라도 압도적인 무대 세트를 자랑하던 한국 버전과 달리 폐허가 된 건축 구조물로 된 원 세트 무대를 회전시켜 극중 배경을 만들어냈다.

<마타하리> 2018년 일본 공연에서 아르망과 라두 역을 번갈아가며 연기하는 배우 가토 가즈키.|우메다예술극장 제공, photograph by Takako Kishi

우메다예술극장의 오카다 가즈코 프로듀서는 “<마타하리> 대한 관객들의 반응이 매우 좋고 티켓 판매도 빈자리가 거의 없을 정도라면서 이번 공연의 준비기간이 짧은 탓에 오사카와 도쿄를 합쳐 전체 상연 횟수가 29번인 게 아쉽다 말했다. 이어 “<마타하리> 같은 공연의 경우 제작에 여러 요소가 맞물려 있지만 기획이 매우 중요하다. 캐스팅과 관련해 실력파 배우인 가토 가즈키가 아르망과 라두 대령을 번갈아가며 소화하는 게 우리 프로덕션만의 매력이다"라고 덧붙였다. 가토 가즈키는 유난히 한국과 인연이 깊은 배우로 2012<커피 프린스>, 지난해 <프랑켄슈타인>에 이어 올해 <마타하리>까지 한국 뮤지컬의 일본 라이선스 공연 3편에서 주역을 맡았다.

오사카에 위치한 우메다예술극장.|우메다예술극장 홈페이지(http://www.umegei.com)

1900석의 대극장과 900석의 중극장을 가진 우메다예술극장은 우리나라에 잘 알려져 있지 않지만 일본 공연계의 주요 제작사 가운데 하나이며 배우 매니지먼트도 겸하고 있다. 일본의 거대 기업 한큐한신도호그룹을 구성하는 한큐한신홀딩스, H2O리테일, 도호 가운데 한큐한신홀딩스의 자회사 가운데 하나다. 여성들만 출연하는 것으로 유명한 다카라즈카 가극단도 한큐한신홀딩스 소속이다. 그리고 우메다예술극장은 일본에서 영화 및 공연 제작과 배우 매니지먼트로 정평이 나 있는 도호와는 협력 관계다. 이번 <마타하리> 도쿄 공연 역시 도호와 공동으로 주최했다.

오카다 프로듀서는 우메다예술극장은 지난 2012년 재일 한국인 극작가 정의신이 쓰고 한일 배우들이 출연했던 연극 <나에게 불의 전차를>을 공동제작한 적이 있지만 한국 뮤지컬을 라이선스로 무대에 올리는 것은 <마타하리> 처음이라면서 “<마타하리> 서울에서 봤을 때 제1차 세계대전 속에서 사랑을 위해 스파이로 나선 마타하리의 드라마틱한 삶, 프랭크 와일드혼의 로맨틱한 음악이 어우러져 일본 관객들에게 사랑받을 수 있는 요소가 많다고 생각했다 말했다. 이어 앞으로 기회가 된다면 처음부터 한국 뮤지컬 제작사와 협력해 작품을 만들어가는 것도 좋을 것 같다 덧붙였다.

2014년 공연된 EMK 버전의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 공연 사진.|EMK 제공

한편 일본에선 오는 10~11월 도호가 EMK 버전을 바탕으로 제작하는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도쿄 제국극장 무대에 오른다. 오사카, 후쿠오카, 나고야 등에서도 공연될 예정인 이 작품은 원래 도호가 빈 뮤지컬의 거장인 극작가 미하엘 쿤체와 작곡가 실베스터 르베이 콤비를 기용해 2006년 제작한 것이다. 하지만 EMK2014년 한국에서 이 작품을 올리면서 도호 버전의 대본과 음악 등을 80% 이상 뜯어고쳤다. 이후 쿤체-르베이 콤비, 도호와 재협상을 벌여 EMK 버전이 공연될 경우 로열티를 나누기로 합의했다. 이에 따라 EMK는 지난 2016년 헝가리에서 뮤지컬 <마리 앙투아네트>가 공연되면서 로열티를 받은 바 있다. 이번 도호 버전은 EMK 버전을 바탕으로 할 뿐만 아니라 한국 프로덕션 연출가였던 로버트 요한슨 등 크리에이티브팀이 대부분 참여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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