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를 걷다④]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의 모자이크 인물화와 무능한 황제의 취미가 남긴 그림
글·사진ㅣ류동현 미술 저널리스트
차가운 공기를 뚫고 찾아간 곳은 산 비탈레 성당이다. 터키 이스탄불의 아야 소피아에 버금가는 모자이크 그림이 이곳에 남아있다. 산 비탈레 성당이 있는 곳에는 라벤나의 역사를 보여주는 유적과 유물이 모여있다. 그 시작은 국립박물관이다. 산 비탈레의 오래된 수도원을 개조한 국립박물관은 1885년도에 개관했는데, 로마 시대부터 바로크 시대까지 아우르는 다양한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다.
아름다운 모자이크화부터 중세 시대의 성화, 조각, 검까지 과거 이곳의 역사를 잘 보여주고 있었다. 특히 말 그대로 '예쁜' 모자이크 인물화가 눈길을 붙잡았다. 다양한 색상의 돌을 촘촘히 박아서 '그린' 모자이크화는 요즘 시대의 디자인적 요소가 느껴질 정도로 선명하고 경쾌했다. 오래된 박물관의 건물과 현대적 조각의 대비가 잘 드러난 박물관 중정의 흰말 조각도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을 지나 바깥으로 난 문을 나오면 그곳에 산 비탈레 성당이 위치해 있다. 6세기 성 소피아 성당과 거의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산 비탈레 성당은 라벤나 영화(榮華)의 상징이라 할 것이다. 15세기 콘스탄티노플의 함락 이후 성 소피아 성당의 아름다운 모자이크화는 겉에 칠한 회벽 뒤로 사라졌지만, 이곳의 모자이크화는 역사 속에서 찬란히 빛을 발했다. 동 로마 제국의 황제였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6세기 치세를 통해 전성기 로마 제국의 영토를 수복하는 데 힘을 쏟았다.
유스티니아누스 황제는 벨리사리우스라는 유능한 장수를 시켜 이탈리아반도를 수복하는 데 성공했고, 1세기 전 로마에서 옮긴 수도 라벤나에 '지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성당'인 산 비탈레 성당을 지었다. 겉에서 보면 꽤 쇠락한 느낌의 소박한 벽돌 건물인데, 들어서면 또 다른 세계가 기다리고 있다. 바닥의 모자이크에 한 번 놀라고 눈을 들어 천장을 보면 18세기에 그려진 바로크 시대의 천장화가 천상의 풍경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곳의 하이라이트는 역시나 제단부의 모자이크화다.
제단부 전체가 휘황찬란한 모자이크화로 감싸져 있다. 여기에 위아래로 난 창은 모자이크의 아름다움을 더욱 강조한다. 앞 부분에는 세상의 지배자인 예수가 우주를 상장하는 파란색 구에 앉아있고 옆에는 성당을 봉헌하는 주교와 이 성당의 주인인 비탈리스 성인이 자리를 잡고 있다. 그 옆으로는 이 성당을 지은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와 신하들, 부인인 황후 테오도라와 시녀들의 모자이크화가 위치해 있다. 서로마와 동 로마로 분리되어 쇠락기를 겪은 서로마의 본토를 수복한 황제의 자부심이 이 성당에서 느껴진다.
아름다운 모자이크 그림을 뒤로하고 밖으로 나오면 옆에 자그마한 건물이 있다. 바로 갈라 플라치디아의 무덤이다. 작은 무덤이지만, 무덤 내부는 아름다운 모자이크화로 가득 차있다. 아름답지만, 로마 제국의 쇠락을 드러내기도 하는 증거이기도 하다.
4세기 테오도시우스 1세는 장남인 아르카디우스와 차남 호노리우스에게 광활한 로마 제국을 물려준다. 이렇게 되니, 형인 아르카디오스는 당시의 메인 영토였던 동 로마를 차지하고 동생인 호노리우스에게는 서로마를 넘겨준다. 이미 게르만족들로 인해 쇠락한 본토를 얻게 된 호노리우스는 라벤나를 새로운 수도로 삼았다. 로마제국이 동 로마와 서로마로 분리가 된 것이다. 후세의 역사가들의 평가가 꽤 박한 것에서 알 수 있듯이, 아르카디우스와 호노리우스 두 황제는 통치자로서 능력을 발휘하지 못했다. 라벤나를 수도로 삼은 것도 게르만족의 침입 시 재빨리 동 로마로 도망을 치기 위해서였다는 의견도 있으니.
갈라 플라치디아는 이러한 호노리우스의 여동생으로 능력 없는 호노리우스를 대신해 서로마 제국을 통치했다. 호노리우스의 휘하 장군이었던 콘스탄티우스 3세(후에 호노리우스와 공동 황제가 된다)와 결혼을 한 후 서로마를 25년간 섭정하면서 예술을 후원했다. 그러한 여제의 묘당 치고는 소박한 규모이지만, 내부는 그렇지 않다. 5세기 초반에 조성된 묘당 안에는 석관과 함께 천상의 세계를 뜻하는 청색 모자이크와 선한 목자와 성 로렌스 등 다양한 인물을 그린 모자이크화로 가득 차있다. 모자이크화 중 책장에 들어있는 네 복음서의 모습이 흥미로웠다. 음영까지 줄 정도로 현대적인 느낌이 들었다.
존 윌리엄 워터하우스의 그림 중 <호노리우스 황제의 애완용 닭>(1883)이라는 작품이 있다. 워터하우스는 최근 맨체스터 미술관의 <힐라스와 님프들> 철수 사건으로 이름을 오르내린 화가로, 19세기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한 작가다. 런던의 로열 아카데미에서 수학한 그는 작업 초기에 대리석을 가장 잘 묘사한다고 평가받는 로렌스 알마 타데마의 영향을, 이후 당시 활동하던 라파엘 전파의 영향을 받았다. 주로 그리스 신화나 역사 속 이야기를 시적으로 그림 속에 풀어냈다.
무능한 황제였던 호노리우스는 취미가 닭을 기르는 것이었다. 가장 좋아하는 닭에게 로마라는 이름을 붙인 황제가 로마가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신하로부터 듣고 "내 손바닥 위에 로마가 있는 데 무슨 소리냐"라고 이야기했다는 에피소드까지 있을 정도였다. 이 장면을 그린 화가는 호노리우스의 무능함을 그림을 통해 풍자하면서, 역설적으로 지도자에게 필요한 덕목을 상기시킨다. 이런 어처구니없는 에피소드를 정교한 그림으로 그린 점이 개인적으로 놀랍긴 하지만.
갈라 플라치디아의 묘당을 나오니 차가운 겨울 햇살이 건물 위로 떨어지고 있다. 화려함과 쇠락함, 현세와 내세의 경계가 이곳에 공존하고 있었다. 아마 겨울의 라벤나라서 더욱 그렇게 느껴졌을지도 모르겠다.
미술 저널리스트 류동현은 서울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0여 년간 미술전문지
<아트>(현 <아트인컬쳐>),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고, ‘문화역서울 284’ 전시 큐레이터를 했다.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만지작만지작 DSLR 카메라로 사진찍기>, <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공저),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공저), <한국의 근대건축>(공저), < 런던-기억>, <미술이 온다> 등의 저서와 공역서 <고고학의 모든 것>이 있다. 전시 <은밀하고 황홀하게展>과 <페스티벌284: 美親狂場>, <프로젝트284: 시간여행자의 시계>를 기획했고, 개인전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展>을 열었다. 현재 미술 저널리스트 겸 전시기획자, 페도라프레스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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