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출가 시대의 오페라, 현대적인 재해석인가 원작의 파괴인가?
레지테아터 오페라를 둘러싼 논란
글 | 장지영·공연
칼럼니스트
국립오페라단과 서울시오페라단은 한국 오페라계를 대표하는
단체다. 두 단체가 올해의 첫 작품을 4월에 나란히 무대에
올렸다. 국립오페라단은 <마농>(4월 5~8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 서울시오페라단은 <투란도트>(4월 26~29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를 선보였다. 여기에 민간 오페라단을 중심으로 9회째를 맞는
대한민국오페라축제는 올해 라벨라
오페라단의 <가면무도회>(4월 27~29일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를 개막작으로 5월 27일까지 한 달간의 여정을
시작했다.
세 프로덕션의
공통점을 꼽으라면 하나같이 원작의 시·공간을 충실히 재현한
전통적인 무대 대신, 연출가의 해석에 따라 시대 배경과 분위기 등을 바꿨다는 점이다. 사실 전 세계 오페라계에서 연출가가 작품을 새롭게 만드는 ‘레지테아터’는 대세로 자리 잡은지 오래다. 레지테아터(Regie-Theater)란 연출가가 시대와 배경
설정을 자유로이 바꿀 수 있는 연출가 중심의 무대를
말한다.
이번 세
프로덕션 가운데 레지테아터 스타일을 극명하게 보여준 것은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였다.
1926년 초연된 <투란도트>는 주세페 베르디를
이어 이탈리아 오페라의 왕좌에 오른 자코모 푸치니의 마지막 작품이다. 카를로 고치가 페르시아
민화집을 소재로 쓴 동명 우화극(1762년)을 바탕으로
했다.
중국의 공주 투란도트는 한번
보면 마음을 뺏길 만큼 아름답지만 얼음처럼 차갑다.
과거 침략자들에게 능욕당했던 할머니의 복수를 위해 청혼하는 왕자들에게 세
가지 수수께끼를 맞히게 한다. 하나라도 틀리면 왕자의 목은 달아난다. 나라가 잃고 떠돌던
타타르 왕자 칼라프가 투란도트를 보고 청혼한다.
칼라프는 수수께끼를 모두 맞히지만 투란도트는 약속을 지키길
거부한다. 하지만 칼라프의 진심, 그리고 칼라프를 사랑하던 여종 류의 희생에 마음을 열게
된다.
배경은 중국 베이징으로 되어
있지만 <투란도트>는 역사적 사실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실제로 공주의 이름인 투란도트가 페르시아어로 중앙아시아를 의미하는 ‘투란’의 딸이라는 것이나 시대적
배경을 ‘전설의 시대’라고 한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즉 서양인의 눈에 구분이 안 되는 동양적인 요소들을 뒤섞은 작품인 셈이다. 일본을 배경으로 한 <나비부인>보다도 리얼리티가
떨어지는 오리엔탈리즘의 극치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초연
이후 <투란도트> 연출은 대체로
전통적인 중국풍 무대세트와 의상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프로덕션이 대부분이었다. 특히
1987년 뉴욕 메트로폴리탄오페라에서 프랑코 제피렐리 연출로 선보인 <투란도트>는 중국풍 스펙터클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나라에서도 국립오페라단의 <투란도트>를 비롯, 그동안
선보였던 프로덕션에서 무대세트 디자인이나 규모 등의 차이는 있었지만 한결같이 중국풍이었다. 2003년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에서 공연된 장이머우 연출의 <투란도트>는 중국에서 자금성을
무대로 선보였던 프로덕션을 재현한 것이다.
그런데,
최근 해외에서는 중국풍 무대에서 탈피한 프로덕션이 나오기
시작했다. 영화 <파니
핑크> 등으로 유명한 독일 여성감독 도리스 되리는 2003년 무대에 거대한
테디베어를 놓은 <투란도트>를
선보였다. 테디베어는 어린 시절 심리적 트라우마 때문에 정신적 성장이 멈춘 투란도트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장치다. 또 2015년
‘오페라계의 도살자’로 불리는 칼리스토
비에이토가 북아일랜드 오페라에서 연출한 <투란도트>는 전체주의 치하의
플라스틱 인형 공장을 배경으로 한다.
전 지구적 자본주의 시대에 소비자 우선 정책에 따라 노동자들은 노예처럼
일할 수밖에 없는 모습을 패러디했다.
그리고 국립오페라단에서 <보리스
고두노프> 등을 연출한 바 있는 스테파노 포다는 2017년 이탈리아 토리노
레지오 극장에서 초현실적인 미니멀한 무대를 선보였다.
연출, 무대세트 및 의상
디자인을 모두 하는 포다는 흰색과 검은색으로 수수께끼 같은 프로덕션을 선보였다.
이러한 흐름에
발맞춰 서울시오페라단의 <투란도트>는 우리나라에서 전통
중국풍을 벗어난 첫 프로덕션으로 미래 사회를 배경으로 했다. 연출가 장수동은
기계문명의 붕괴로 인한 대규모 환경 파괴 속에서 삶의 터전을 송두리째 잃어버린 지구촌 생존자들의 이야기로 바꿔놓았다. ‘포스트 아포칼립스(종말 이후의
세계) 오페라’를 표방한 이 작품은
기계문명이 붕괴한 미래 사회를 당인리 화력발전소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무대 세트로 표현했다.
이번
<투란도트>에서 장수동의 연출은 흥미로웠지만 세부적으로 아쉬운 부분도 적지 않았다. 문명의 붕괴로 기술적으로
퇴보했다고는 하지만, 미래 세계를 배경으로 삼고 있는데도 의상이나 소품 등에는 아직 군데군데 전통적인 요소가 섞여 있었다. 게다가 배경만 바뀌었을 뿐 등장인물들은 전통적인 연출에서와 크게 다르지 않아 미래적이란 느낌이
들지 않았다.
<투란도트>만큼 파격적이진
않지만 국립오페라단의 <마농>도 원작과
달라졌다. 오페라 <마농>은
19세기 프랑스 오페라를 대표하는 작곡가 쥘 마스네의 대표작으로 1884년 초연됐다. 아베 프레보의 소설
『기사 데 그리외와 마농 레스코의 이야기』(1731년)를 바탕으로 두 남녀의
우연한 만남과 비극적인 최후를 그렸다.
연출가 뱅상 부샤르는 원작소설의 시대배경인 18세기
대신 오페라가 초연된 19세기 말과 현대적 분위기를 독특하게 조합했다. 예를 들어 원작 소설
또는 오페라의 시작은 역마차가 오가는 아미엥의 여관이지만 부샤르는 기차역으로 바꿔놓았다. 또
<가면무도회>는 원래 17세기를 배경으로 했지만
라벨라 오페라단 프로덕션에선 상징적인 무대여서 구체적인 시대적 배경을 확실히 알기 어렵다.
레지테아터는 1930년대 독일 연극의
총아였던 연출가 막스 라인하르트가 창안했다.
라인하르트는 연출에 대해 단순히 텍스트를 무대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율성을
가진 하나의 예술'이라고 봤다.
“죽은 작품을 무대의 살아있는 언어로 바꾸는 것”이
그가 생각하는 연출이다. 즉 연출가는 희곡에 쓰인 대로 그를 재현하는 대신 새롭게 해석해 무대에 올려야 한다는
것이다. 조명,
음악, 음향 등 시청각적 요소를
활용해 상상력 풍부한 무대를 선보인 그의 연출은 당시 평면적이고 무미건조한 자연주의 무대에 연극성을 부활시킴으로써 관객들을
사로잡았다. 물론 당시에도 “원작에 충실해야
한다”며 반발하는 목소리가 나왔지만
연극계에서 레시테아터는 점차 일반화됐다. 연출가들이 상상의 나래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데다 미니멀하고 상징적인 무대세트와 의상으로 제작비를 절감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일부
성악가들은 연출가의 과도한 요구 때문에 자신의 가창력을 제대로 발휘하기 어렵거나 이미지에 타격이 간다며 출연을 거부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에서도 2008년
국립오페라단의 <살로메> 공연 당시 헤롯 역에 더블 캐스팅된 한국 테너 2명이 ‘빨간
삼각팬티’를 입으라는 베네수엘라 연출가 카를로스 바그너의 지시를 따를 수 없다며
개막 2주를 앞두고 사퇴하는 소동이 일었다. 당시 바그너는 “삼각팬티는 헤롯 왕의
유아적이고, 안하무인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한 의상으로 타협할 수 없다”고 주장했고, 국립오페라단은 독일 테너를 긴급 섭외해야 했다.
하지만 유럽에선
오페라에 보조 연기자는 물론이고 주역 성악가가 반라 혹은 전라로 등장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살로메>는 에로틱한 연출이
자주 나오는 작품으로 유명하다. 특히 살로메가 춤을 추면서 베일을 벗는 ‘일곱
베일의 춤’ 장면이 대표적이다. 나체가 되는 설정이라도 대부분의 소프라노들이 피부색의 레오타드를 입는다. 하지만 영국 로열오페라, 미국 MET, 북아일랜드 오페라 등에서는 소프라노들이 연출가들의 요구에 따라 실제로 나체 연기를 감행하기도
했다.
오페라계에서 레지테아터에 대한 비난은 여전히 만만치
않다. 폭력과 선정성이 지나치거나 설정 자체가 억지스러운 경우도 적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원작의 주제를 두드러지게 만드는 것을 넘어서 아예 새로운 이야기를 만드는 경우에 대해
전통적인 팬들은 질색하기도 한다.
특히 극단적인 레지테아터 오페라에 대해
미국에서는 ‘유로-트래쉬(유럽 쓰레기)’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하며, 또 칼릭스토 비에이토 같은 연출가들에 대해선 ‘오페라계의 도살자’라고 부르기도
한다.
2009년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 오프닝에서 유명 소설가 다니엘 켈만은 독일어권의 레지테아터 오페라를 통렬히 비판하기도 했다. 켈만은 “독일 공연계에선
레지테아터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선 보수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역사를 재현하는 연출을 지시하면 반동적인 것으로
치부해 버린다”고지적했다.
이에 대해
레지테아터를 대표하는 페터 콘비츠니는 2010년 독일 라이프치히
오페라극장에서 열린 심포지움에서 “많은 사람들이 작품 초연
당시의 모습으로 재현하는 것이 ‘원작에 대한
충실함’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것은 착각이다. 초연 당시로부터 컨텍스트(맥락)가
변화했기 때문이다. 연출가의 역할은 원작과
관객의 중개자로서 작품에 내재하는 메시지를 현대
관객에게 전달하는 것으로, 이것이야말로 원작에 대한 충실함이다”고 주장했다. 즉 레지테아터와 ‘원작에 대한
충실함’은 모순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오페라계에서
레지테아터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전망이다. 결국 선택은 관객의 몫이다.
[출처]
올댓아트
20살을 위한 처방전 (0) | 2018.05.17 |
---|---|
'뮤덕'은 다 남배우 팬? 여배우 응원하는 여성 팬들의 이야기 (0) | 2018.05.14 |
바우하우스 (0) | 2018.05.03 |
<맨 오브 라만차>의 '홍할배'로 돌아온 홍광호, 당신이 몰랐던 이모저모 (0) | 2018.05.02 |
오늘따라 생각이 나는 그 윤동주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0) | 2018.04.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