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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면데면한 부부, 어색한 모자 사이도 이어주는 게 와인입니다

사회, 문화 정보

by 배추왕 2021. 1. 14. 0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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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인을 맛있게 먹으려면 코르크 마개를 따고 기다리세요. 2시간 이상 여유를 두고 천천히 음미하시면 맛이 제일 좋습니다.”

코로나19 사태로 집에서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졌다. 술자리나 회식이 줄면서 레스토랑과 술집은 매출에 큰 타격을 입었다. 반면 와인 판매량은 급증했다. 집에서 술을 즐기는 이른바 ‘혼술’, ‘홈술’ 족이 늘어서다. 이마트에서는 올해 1월 1일부터 12월 13일까지 와인 매출(27.7%)이 맥주(25.2%)를 넘어섰다. 편의점에서도 와인의 인기는 이어졌다. 이마트24에선 올해 와인이 150만병 이상 팔려나갔다. 역대 판매 기록을 갈아치우며 와인은 ‘국민 술’이라는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와인에 대한 관심은 커졌지만, 생산 국가와 품종이 다양한 탓에 여전히 와인을 어려워하는 사람이 많다. 유튜버 ‘와인디렉터 양갱’은 이 같은 초보자를 위한 와인 관련 영상을 올린다. 코르크 마개를 쉽게 따는 법을 소개하고 동네 마트에서 살 만한 가성비 와인을 추천한다. 와인 초보자의 궁금증을 속 시원하게 풀어주면서 1년 만에 7만명이 넘는 구독자가 모였다. 유튜버이자 옥수동 와인샵 ‘좋은와인’을 운영하는 양경훈(43) 대표에게 와인을 쉽게 즐기는 법에 관해 물었다.

양경훈 좋은와인 대표. /jobsN

-이력이 궁금하다. 소믈리에로 시작해 20년간 와인을 다뤄왔다고.

“입대하기 전부터 F&B(식음료) 업종에서 일했다. 원래 술을 잘 못 마신다. 와인을 다루기 전에는 맥주도 거의 입에 대지 않았다. 소주도 1년에 많아야 1병가량 마셨다. 레스토랑에서 소믈리에로 근무하면서 와인을 접했는데, 처음에는 맛에 매력을 못 느꼈다. 그러다 프랑스 보르도산 올드 빈티지 와인을 마셔보고 충격받았다. ‘술이 이렇게 맛있을 수가 있구나’ 하며 감탄했다. 와인에 관심이 생기면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시작했고, 꾸준히 파고들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4~5년을 레스토랑에서 일하고 와인 도매사와 수입사에서도 근무했다. 와인샵을 연지는 11년 정도 지났다. 유튜브는 2019년 2월 시작했다.”

-올해 와인 인기가 급등했다고. 체감하는 변화가 있는지 궁금하다.

“작년 초 유튜브 채널을 열 때만 해도 구독자 1만명만 모여도 성공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벌써 7만명이 넘었다. 코로나19 사태가 터지기 전부터 와인에 대한 대중의 관심이 조금씩 커지고 있었다. 그러던 중 코로나가 찾아왔고, 혼술과 홈술 문화가 퍼지면서 업계가 수혜를 입었다. 와인 매출이 급격하게 늘었다. 와인은 어렵고 비싸기만 한 것으로 생각했던 젊은 층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인기가 급등했다.”

-그런데도 여전히 와인은 고급문화라는 인식이 남아 있는 것 같은데.

“우리가 영상을 찍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소비자가 와인에 대해 느끼는 심리적 장벽을 낮추고 싶다. 그래서 와인에 관심이 없는 사람이 봐도 쉽게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한다. 전문용어는 웬만하면 안 쓴다. 와인을 추천하는 영상을 찍을 때도 대부분 동네 마트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제품을 고른다. 와인의 대중화를 위해서다.

입문자분들에게는 와인을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라고 한다. 서양에서는 와인이 전통주다. 우리나라의 막걸리나 마찬가지다. 이탈리아나 프랑스에서는 소규모 와이너리에 저울을 들고 가서 직접 와인을 사 온다. 우리나라에서나 어렵고 고급스럽게 여기는 술이지, 현지에서는 전혀 그렇지 않다. 격식 있게 마셔야 할 것 같다는 건 편견이다. 다른 나라의 전통주를 우리나라에서 먹을 뿐이다. 굳이 비싼 게 아니라도 괜찮다. 이것저것 사서 마셔보는 게 좋다.”

와인 매장을 찾아다니며 추천 제품을 소개하는 양 대표. /양갱 유튜브 캡처

-초보자가 도전해볼 만한 와인이나 연말연시 선물용 와인도 추천해 달라.

“와인은 기호식품이다. 모두에게 맞는 와인을 찾기는 힘들다. 만일 와인을 처음 먹어봤는데 쓴맛이 났다면 모스카토 다스티를 권한다. 이탈리아에서 생산하는 와인인데, 알코올 도수가 5~6%로 낮은 편이고 사이다처럼 달다. 맥주처럼 가볍게 마시기에 좋다. 술을 잘 마시지 못하는 사람과도 함께 즐길 수 있어 연말 파티용으로 좋다. 품질이 뛰어난 제품도 3만원이 넘지 않아 부담도 적다.

평소 소주나 양주를 즐겨 마시는 분에게는 레드와인을 추천한다. 독한 술을 좋아하는 분은 도수가 높거나 파워풀한 와인을 마셔야 맛을 잘 느낀다. 칠레산 카베르네 소비뇽이나 호주에서 생산한 시라즈를 권한다. 2만~3만원이면 양질의 와인을 마실 수 있다. 5만원대인 미국산 카베르네 소비뇽도 술을 좋아하는 누구에게나 잘 맞는 술이다.”

-유튜브를 운영하면서 자주 듣는 질문이나 와인에 대한 오해가 있다면.

“와인을 어떻게 마셔야 맛있는지 물어보는 분이 많다. 와인은 맥주나 양주처럼 뚜껑을 따서 바로 마시면 안 된다. 만일 30분 안에 병을 비웠다면 와인 맛의 20%밖에 느끼지 못한 것이다. 100%를 즐기려면 2~3시간에 걸쳐 천천히 맛을 봐야 한다. 시간에 따라서 와인 맛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느껴야 한다. 김치를 예로 들면 이해하기 쉽다. 와인은 코르크 마개를 따는 순간 김치가 익어가듯 공기를 만나면서 맛과 향이 변한다. 이를 ‘숨을 쉰다’고 표현하는데, 전문용어로 ‘브리딩(breathing)’이라 한다.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 사람들은 와인을 하나의 유기물로 본다. 와인이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흔들지도 않는다. 제품마다 다르지만, 최소한 2시간 이상 여유를 두고 천천히 마시기를 권한다.

와인을 어떤 음식과 함께 즐기면 좋을지 묻는 분도 많다. 빨간 술은 빨간 음식(고기)과, 하얀 술은 하얀 음식(닭 등 가금류, 흰살생선)과 마셔야 한다는 이야기가 있다.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예외적인 경우가 있다. 화이트 와인은 종류가 수십 가지다. 그중 샤르도네라는 품종이 있는데, 여느 화이트 와인과 다르게 오크통에 숙성을 하는 제품이 있다. 오크 숙성을 거친 샤르도네를 회나 생선과 먹었다가는 낭패를 볼 수도 있다. 비린내가 몇 배로 심해지기 때문이다. 음식과 술맛을 모두 버리는 불상사가 생기지 않게 주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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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와인이 유난히 비싸다는 지적도 있는데.

“프랑스에서 만든 와인을 프랑스에서 사면 당연히 값이 저렴하다. 그런데 국경을 넘어가는 순간 더 많은 세금이 붙고, 유통 과정을 거치며 값이 비싸진다. 수입사가 물류비·세금·보관비 등을 부담하면서 가격이 뛰고, 도매상으로 넘어가면서 물류비와 도매상 마진이 추가로 붙는다. 가격 상승은 불가피한 셈이다. 우리나라는 주류세 자체도 다른 나라보다 비싼 편이다. 일본에서는 와인의 양에 따라 세금을 매기는데, 우리나라는 술값이 기준이다. 올해 맥주와 탁주는 종량제로 바뀌었지만, 와인은 여전히 종가세를 적용받는다. 나라마다 세금 체계가 달라 어쩔 수 없다.”

-와인을 맛있게 먹는 팁이 따로 있나.

“음용 온도도 중요하다. 냉장고에서 바로 꺼낸 우유와 실온 보관한 우유의 맛이 다르다. 실온 보관한 우유는 맛이 묵직하고 쉽게 질린다. 너무 차가운 우유는 본연의 고소한 맛이 나지 않는다. 와인도 마찬가지다. 레드와인을 차갑게 마시면 산도가 도드라지고 타닌(tannin)의 느낌이 불쾌하다. 레드와인의 향도 나지 않는다. 온도가 너무 높아도 못 마신다. 와인병을 개봉하고 기다리는 이유 중 하나도 음용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다. 

와인잔도 신경 쓰면 좋다. 포도 품종별로 잔이 있지만, 일반인이 전용 잔을 갖추기는 힘들다. 레드·화이트·샴페인 잔 3가지만 있으면 거의 모든 와인을 즐길 수 있다. 상술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전용 잔으로 마실 때 훨씬 맛이 좋다.”

-와인디렉터가 꼽는 와인의 장점은 뭔가.

“취하지 않고 즐길 수 있는 유일한 술이다. 또 와인은 사회적인 지위를 막론하고 사람을 하나로 묶어준다. 와인을 정말 좋아하는 애호가 중에서는 아무래도 병원장·대치동 스타강사·대기업 임원·기업체 대표 등 고소득자가 많다. 나는 학력이 좋지도 않고, 집안이 부유하지도 않은 지극히 평범한 시민인데도 이들과 함께 와인을 즐기며 이야기를 나눈다. 와인이 모두에게 평등한 술이라는 걸 직접 체험하고 나니 와인이 더 좋아졌다. 20년째 와인을 다루고 있지만, 지금도 와인의 장점과 매력을 알아 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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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독자분들이 남긴 댓글을 보고 감동할 때도 있다. 한 분은 ‘공통된 취미가 없어서 부부 사이가 데면데면했는데, 채널을 접하고 와인을 함께 마시면서 집안 분위기가 화목해졌다’라는 글을 남겼다. 또 어머니와 어색하게 지냈던 아들이 어머니한테 와인을 소개하면서 친해졌다는 사연도 있었다. 와인 하나로 인간관계가 돈독해졌다는 댓글을 보면 유튜브를 시작하기 잘했다는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 계획은.

“와인 시장이 급격하게 커지긴 했지만, 이제 막 성숙 단계에 진입했다고 본다. 여기서 더 나아가려면 저녁 식탁에 아무렇지 않게 와인이 올라와야 한다. 특별한 날이어서가 아니라, ‘오늘 저녁에는 무슨 와인을 마실까’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오면 좋겠다. 돈 있는 사람이나 마시는 술이라던 인식이 이제야 조금씩 바뀌고 있다. 예전에는 와인을 마신다고 하면 허세를 부린다고 욕을 먹기도 했다. 이제는 건전한 취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아졌다. 와인을 제대로 알고 마시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유튜브 채널도 이만큼 성장할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채널을 만들 때 세운 목표는 한 번도 와인을 안 마셔본 분들에게 와인을 알리는 거였다. 지금도 목표는 같다. 많은 분이 오랫동안 좋은 와인을 소개받고 지식을 얻어갈 수 있게 돕고 싶다. 와인이 어렵다는 선입견을 버리고 한 번만 접해보시면 좋겠다. 와인 덕분에 일상생활이 바뀌었다는 분도 종종 만난다. 술 하나로 일상이 달라진다는 게 정말 신기한 일 아닌가. 많은 분이 이런 경험을 해보면 좋겠다. 앞으로도 좋은 술을 많은 분과 함께 즐기고 싶다.”

글 jobsN 송영조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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