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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담기지 않은 알마와 육체적인 사랑 미찌

사회, 문화 정보

by 배추왕 2018. 4. 23. 1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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캔버스에 담기지 않은 알마와 육체적인 사랑 미찌


52세의 클림트 사진(1914).
동양풍으로 장식한 클림트 빌라 1층에 있는 응접실, 한쪽 벽에 걸린 커다란 관운장 그림이 눈길을 끈다. 클림트는 말년에 동양문화에 심취해 일본의 목판화인 우키요에, 중국과 일본의 도자기와 그림을 수집해 집 안을 장식했다. 클림트는 매일 아침마다 그림을 그리며 규칙적인 생활을 했는데, 간혹 아침 스케치를 거르는 날이면 응접실에서 일본 미술에 대한 책을 읽곤 했다. 사진Ⅰ아르테.
평생 독신으로 지냈던 클림트는 아이러니하게도 늘 여자들에게 둘러싸여 지냈다. 어머니와 누나, 여동생이 클림트 빌라에 함께 살며 평생의 수발을 들었으며, 예술적이든 육체적이든 그의 정열을 해소해 줄 모델들이 아틀리에를 채우고 있었다.

또한 상류층 귀부인들은 앞다투어 그에게 초상화를 부탁하며 그의 아틀리에를 드나들었다. 19세기 말 빈의 사교계는 가십거리를 놓치지 않았지만, 의외로 상류층 유부남, 유부녀의 애정 행각에 관대한 편이었다. 그래서인지 클림트는 죽을 때까지 다양한 염문설의 주인공이 될 수 있었다.
(왼쪽부터) 클림트가 그린 에밀리, 미찌, 아델레 사진Ⅰ아르테.

클림트의 셀 수 없는 염문설의 주인공 중 클림트를 논할 때 빼놓지 않고 거론되는 여성이라면 에밀리와 마찌, 그리고 아델레다. 또한 특이하게도 빈의 뮤즈이면서도 클림트의 캔버스엔 단 하나의 얼굴도 남기지 않은 알마를 들 수 있겠다. 사돈(동생 에른스트의 아내 헬레나의 동생)으로 결혼하지 않고 각자의 삶을 즐기며 평생 연인으로 지냈고, 재산 집행인이 되어 클림트의 사후를 정리한 에밀리가 그의 연인으로 첫 번째로 꼽힐 수 있겠다.
 
두 번째는 클림트의 모델이면서 클림트의 아이를 둘이나 낳았고, 연인 에밀리와 지내던 여름 별장에서도 끊임없이 편지를 보냈던, 클림트의 육체적인 사랑 미찌다. 클림트는 행여라도 에밀리에게 미찌와의 편지가 들킬세라 굳이 답장하지 마라거나 엽서가 아닌 편지를 보내라는 등 나름 조심을 했다고 한다. 에밀리에게 미찌를 숨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아델레 블로흐-바우만의 사진Ⅰ아르테.
무성한 소문 속의 여인, 아델레. 그녀는 부유한 사업가의 아내로, 유명 살롱의 안주인으로, 그의 아틀리에 모델들과는 차원이 다른 여성이었다.

그녀는 클림트의 후원자였으며 예술적 사유의 동반자이기도 했다. 클림트는 그녀에게서 억압된 성과 부에 갇힌 여인을 만들어냈다. 바로 도발적인 아델레를 담은 <유디트 Ⅰ>과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 Ⅰ과 Ⅱ이.
 
특이하게도 클림트가 사랑할 뻔했던 여인 알마와의 관계는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클림트>에 자세히 나와 있다.

… 그에게 매우 중요한 여성이었지만, 끝내 그의 캔버스에 남지 않은 여성도 있었다. 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의 아내가 된 알마 쉰들러가 그런 경우였다. 많은 예술가들의 뮤즈였던 알마는 회고록에서 자신의 첫사랑이 클림트였다고 기억했다.
대작곡가 구스타프 말러와 마우하우스를 창립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함으로써 세기말에 핀, 사랑의 꽃 알마는 진정으로 "사랑한 사람이 있었을까"라는 강한 의문을 남기고 있다. 사진Ⅰ위키피디아.
… 알마의 친아버지 에밀 쉰들러는 화가였다. 그의 아내 안나 베르겐은 알마를 낳은 후 남편의 조수였던 카를 몰과 사랑에 빠졌다. 남편이 죽은 후 안나는 딸 알마를 데리고 카를 몰과 결혼했다. 카를 몰은 클림트와 함께 빈 분리파를 만든 화가 중 한 사람이었다. 카를 몰과의 친분 덕분에 클림트는 그의 집에 드나들었고 알마와도 아는 사이가 되었다. 두 사람은 1899년 이탈리아 여행에도 동행했다. 알마의 나이가 스무 살, 클림트가 서른일곱일 때의 일이었다.
 
… 알마는 이미 그전부터 클림트에게 빠져들고 있었다. 그녀는 일기장에 클림트에 대해 정신과 육체의 완벽한 합일 같은 남자라고 썼다. … 베네치아의 탄식의 다리 위에서 클림트는 알마에게 키스했다. 알마의 의붓아버지인 몰이 그 광경을 보았다. 몰은 클림트에게 더 이상 알마에게 접근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클림트는 몰의 말을 순순히 들었다. 그가 몰에게 보낸 사과 편지의 내용이 흥미롭다.
 
알마는 아름답고 현명하며 위트 있는 여자야. 그녀는 남자가 연인에게 바랄만 한 모든 조건을 다, 그것도 넘치게 많이 가지고 있어. 그녀가 세상 어디에 있든 많은 남자들이 그녀를 따르며 숭배할 거야. 오래지 않아 그녀는 모두가 자신을 우러러보기만 하는 상황을 지겹게 여기게 되겠지……. 이런 일은 사실 좀 위험스러워 보이는군……. 알마가 그 상황을 견디지 못해서 혼돈에 빠지고 마침내 이성을 잃을지도 모르니까 말이야.”
 
클림트의 이 사과 같지 않은 사과 편지는 이내 알마의 손에도 들어갔다. 알마는 격노했고 두 사람 사이에 어렴풋이 피어오르던 사랑의 불씨는 곧 꺼지고 말았다. 알마는 이 경험을 가슴이 찢어지는 듯한 아픔으로 기억하고 있다. -<클림트>중에서
두 딸과 함께 한 알마. 사진Ⅰ위키피디아.
그리고 1902년에 알마는 열아홉 살 연상인, 아버지 같은 나이의 구스타프 말러와의 결혼을 시작으로 건축가 발터 그로피우스와 작가 프란츠 베르펠과 결혼했다. 클림트의 예언(?)대로 알마는 이혼과 불륜을 거듭하며 추종자들의 넘치는 사랑을 받는 삶을 살았다. 그녀와의 스캔들 주인공이 무려 9명이나 된다고 하니….

1960년에 출판된 회고록에서 알마는 클림트를 대통령 같은 남자였다"라고 술회했다. 이 증언은 동료들이 클림트를 장군이라고 불렀다는 프란츠 마치의 증언과도 일맥상통한다. 알마의 고백은 클림트가 그녀에게 얼마나 중요한 사람이었는지를 절로 실감하게끔 한다.

그에게는 거부할 수 없는 매력이 있었다. 무엇보다 그처럼 놀라운 재능으로 넘치는 사람을 나는 일찍이 본 적이 없었다. 그가 하는 한마디, 한마디가 매력적이었다. 내가 본 그는 남자로도, 또 화가로도 더할 나위 없이 완벽한 사람이었다. 그의 남자다움과 나의 젊음, 그의 회화적 재능과 음악에 대한 내 재능이 합쳐지면 우리는 완전무결한 하모니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는 나를 여성으로, 소녀로, 여동생으로 무한히 변신시킬 수 있는 능력을 가진 남자였다.”
(왼쪽) 미찌의 초상. (오른쪽) 클림트의 <피아노 앞의 슈베르트>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 왼쪽의 모델이 미찌다. 이 그림은 클림트를 좋아한 컬럭터 세레나 레더러가 임멘도르프 성에 보관했는데 나치가 후퇴하면서 불을 지른 바람에 소실되고 없다.

빈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 클림트는 결혼하지 않았지만 서른일곱에 두 명의 아들을 얻었다. 18997월엔 마리아 우치카가, 두 달 뒤엔 마리 침머만이 클림트의 아들을 낳았다. 두 여인은 아들에게 구스타프라는 이름은 붙였지만 클림트의 호적엔 오르지 못했다. 다만 클림트가 자신의 아이로 인정함으로써 양육비는 받을 수 있었던 정도다.
 
18살의 마리 침머만은 클림트의 모델이 되었고, 곧 바로 클림트의 아이를 임신한다. 클림트는 마리 침머만을 미찌(Mizzi)’라는 애칭으로 불렀으며, 미찌는 두 아들, 구스타프와 오토를 낳았다. 애정이 담뿍 담긴 수많은 엽서와 편지를 미찌에게 보낸 것을 보면 육체적인 관계를 맺은 다른 모델들과는 달리 일보다는 또 다른 사랑 아니었을까. 클림트는 종종 편지 말미에 당신의 말썽꾸러기 병정으로부터같은 장난스러운 구절을 넣기도 했.

〈희망 Ⅰ〉 1903Ⅰ캔버스에 유채Ⅰ181×67cmⅠ오타와 캐나다 국립미술관. 클림트의 두 아이를 낳은 마리 침머만이 그림 속 주인공이다.
미찌가 낳은 클림트의 두 번째 아들 오토는 한 살이 되기도 전에 세상을 떠났다. 클림트는 오토를 임신한 미찌를 모델로 밝고 환한 그림을 그렸고 <희망 Ⅰ>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임신한 여인의 얼굴이 모성애라기보다는 야릇하게 홍조를 띠고, 해골과 함께 죽음의 그림자들이 여인을 둘러싸고 있다.  오토의 죽음 이후 클림트는 불안과 절망에 빠진 미찌를 표현하며 그림의 분위기를ᅟ바꾸어 놓았다.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클림트>에는 작품 희망 Ⅰ〉 얽힌 이야기가 자세히 나와 있다.
 
… 1903년에 완성된 희망Ⅰ〉 기묘한 분위기, 죽음처럼 어두운 배경 속에 가라앉아 있는 나체의 임산부는 미찌를 모델로 그린 것이다. 처음에는 그림의 제목처럼 배경은 이보다 한결 환한 분위기였다. 오토가 죽은 후 클림트는 그림의 배경을 병과 광기, 죽음의 상징들로 바꾸었다. 말간 얼굴을 가진 만삭의 임산부 뒤로 왼쪽부터 미친 사람의 얼굴, 해골, 그리고 병든 여자의 얼굴이 차례로 보인다.

4년 후에 그린 〈희망 Ⅱ〉 역시 탄생과 죽음을 오버랩한 무거운 분위기다. 1910년에 완성된 어머니와 두 아이의 모델도 미찌일 가능성이 높다. 이 그림을 그릴 당시 미찌가 낳은 둘째 아이 오토는 이미 죽은 후였다.

… 〈희망Ⅰ〉 구입한 빈 공방의 디렉터 프리츠 배른도르퍼는 차마 이 그림을 집의 거실에 걸지 못했다. 그는 이 그림을 벽장의 문 안쪽에 붙여두었다가 보고 싶다는 사람에게만 살짝 보여주었다고 한다. 미찌를 그린 모든 그림에서는 드물게 무거운 분위기가 느껴진다. 후회를 모르던 남자 클림트가 유독 미찌에게만 느꼈던 죄책감의 발로일지도 모른다. -<클림트> 중에서 
*<클림트>는 전문가 100인이 내 인생의 거장을 찾아 12개국 154개 도시로 떠나는 국내 최대 인문기행 프로젝트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중 하나이다. 

▶ 전원경 작가  
연세대학교 졸업.  글래스고 대학교 문화콘텐츠 산업 박사. 월간 『객석』과 시사주간지 『주간동아』 기자로 활동했으며 저서로 <영국, 바꾸지 않아도 행복한 나라> <런던 미술관 산책>과 신간 '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클림트>가 있다. 

글Ⅰ올댓아트 에디터 김영남 · 사진&자료Ⅰ클래식클라우드 시리즈 <클림트> 아르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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