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를 드러내는, 그리고 지켜주는 옷,
MOHO+손종준
패션쇼
글 Ⅰ류동현(미술 저널리스트)
근육질의 남성
모델이 런웨이로 당당히 걸어 나온다. 그런데 그가 입고 있는 옷이 기묘하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오브제를 어깨 뒤에 두르고 있다. 흡사 날카로운 금속으로 제작한 위협적인 ‘천사의
날개’같다. 그 뒤로 나오는 모델 또한 날카로운 금속 오브제를 머리나 팔에 두르고 있다. 심지어 몸 전체에 두르고 있다. 시각적으로 위협적인 인상을 주면서 모델을 보호하려는 듯하다. 자신을 드러내기도, 그리고 자신을 지키려는 느낌이다.
사실 옷이라는 오브제는 이른바 ‘의식주’라는 명칭으로 우리의 삶과 떨어지려야 떨어질 수 없는 요소이지만, 이른바 ‘패션 감각’이 부재해서인지 필자는 지금까지 별 관심이 없었다. 그렇지만 패션이라는 장르는 미술이라는 예술 장르와 꽤 밀접한 관계를 가진다. 기본적으로 미적 감수성을 실용적으로 풀어낼 뿐만 아니라 미술관에서 패션쇼나 패션과 관련된 전시가 종종 열리기도 하고, 미술 작업과의 협업도 곧잘 이루어지는 예술 장르가 바로 패션이기 때문이다.
모든 시각문화는 미술과 연결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유독 패션이라는 장르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는데(못했는데), 지난 10월 중순경,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린 행사 중 하나에 눈길이 갔다. ‘2019 S/S 헤라 서울패션위크’에서 열린 패션쇼 중 하나가 그 주인공이다. 패션에 문외한인 필자의 눈길을 끌었던 것은 한 디자이너의 패션쇼에 미술작가의 작업이 의상의 일부분으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날카로운 금속 오브제의 작업이 바로 그것이다.
‘서울패션위크’는 서울시가 주최하고 서울디자인재단이 주관하는 글로벌 패션 비즈니스 이벤트로 매년 2회에 걸쳐 열리는데, 내년 봄, 여름을 위한 ‘2019 S/S 헤라 서울패션위크’ 행사가 10월 15일부터 20일까지 열렸다. 박춘무 명예 디자이너의 아카이브 전시와 42개 브랜드의 서울 컬렉션, 121개의 디자이너 브랜드가 참여하는 박람회, ‘제너레이션넥스트 서울’, 14회에 걸친 24개 브랜드의 ‘제너레이션넥스트 패션쇼’를 선보였다. 나의 눈길을 끈 행사는 ‘제너레이션넥스트 패션쇼’ 섹션 중, 10월 18일 이규호 디자이너가 선보인 모호(MOHO)의 패션쇼였다.
이번에 모호
패션쇼를 기획, 진행한 이규호 디자이너는 쇼의 콘셉트를 ‘숭고’로 잡고
진행했다. 그는 “인간을 압도하는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우리는 공포 속에서도 말할 수 없는 감동을 느끼게 된다. 불쾌에서 나오는 쾌, 불쾌와 쾌가 혼합된, 이 강렬하고 모순된 감정이 숭고이다. 현대미학에 이르러 숭고는 아방가르드 예술에서 보여주듯이 인간의 합리적 인식의 한계를 넘어 재현할
수 없는 것을 재현하려는 시도에서 발생되는 미적 감정, 부정적 쾌감으로 확장된다”라고 자신의 패션을
소개했다.
이러한 콘셉트를 다양한 의상으로 구체화시키면서 디자이너는 현대미술 작업을 끌어들였다. 손종준 작가의 <자위적 조치(Defensive Mesure)>라는 작품을 통해서다. 손종준 작가가 제작한 뾰족하고 날카로운 금속성의 오브제는 디자이너가 이야기하는 “불쾌와 쾌가 혼합된 강렬하고 모순된 감정”을 직접적으로 불러일으킨다.
손종준 작가는 자신의 작업인 <자위적 조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세분화되고 발전하고 있는 현대사회 속에서 인간성이 획일화되고 개인주의적 풍토가 확산되어간다고 많은 이들이 이야기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서로서로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공격성에 대해 필요 이상의 충격방지대책을 취하면서 자신을 보호하고 있다. 나는 필요 이상의 방어수단, ‘자위적 조치’를 표현한다. 날카로운 금속성의 갑옷과 투구, 보호제 등의 오브제는 자신을 보호하면서 남에게 상처를 입히는 현대사회 속 우리들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이러한 작업을 하게 된 동기를 과거 작가로부터 들은 적이 있다. “과거 일본 유학을 했을 때 한 신문기사를 읽었다. 앙케트 기사였는데, 지방공무원이 국가 기관에 1년 연수할 동안 옆자리의 사람과 휴대폰 번호를 교환하는 데 일반적으로 6개월이 걸린다는 내용이었다. 서로 간에 벽을 쌓고 개인적인 성향의 모습을 드러내는 기사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주변의 사람들과 이야기를 해보니, 대부분의 사람이 개인적이 될 수밖에 없는 ‘방어기제’를 지니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러한 심리적인 상황을 각 개인에 맞게 갑옷의 형태로 형상화했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벽을 <자위적 조치>라는 개념으로 구체화시킨 것이다. 이렇게 제작한 작품은 자신의 속마음을 숨기고 방어하지만, 이 때문에 자신에게도 상처가 되는 기묘한 형태가 되었다. 이후 한국으로 돌아왔더니 일본과 다를 것이 하나도 없었다.”
필자는 과거에
전시를 기획하면서 그의 작업을 소개한 적이 있다. 공간 속에 매달려있는 날카로운 금속 오브제 작업은 그 자체로 공간을 가르는 날카로움과 둔탁함을
동시에 드러냈던 기억이 난다. 이번에 모델이 ‘입은’ 그의 오브제 작업을 보고 ‘아, 원래 그의 작업은 사람이 입는 것이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도
낯설었던 것은 그의 작품이 주는 공격적이면서 방어적인 ‘모순된’ 감정과 연결이 되었기 때문이다. 여기에 패션이라는 예술 장르를 새로이 살펴보게 된 필자의 낯선 감정이 추가된 이유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모델들이 무리를 지어 근엄하게 <자위적 조치>를 입고 등장하는 장면은 이러한 모순된 감정을 넘어 분위기를 압도하는, 디자이너가 이야기한 ‘숭고’의 느낌까지 들게 만들었다. 새로운 경험이다. 인생에서 새로움을 느낀다는 것, 이번 패션쇼를 통해 미술과 패션의 콜라보레이션이 성공했다는 증거일 게다. 그리고 이는 예술이 주는 미덕이 아니겠는가.
미술 저널리스트 류동현은 서울대 인문대학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했다. 10여 년간 미술전문지
<아트>(현 <아트인컬쳐>), <월간미술> 기자로 일했고, ‘문화역서울 284’ 전시 큐레이터를 했다.
<인디아나 존스와 고고학>, <만지작만지작 DSLR 카메라로 사진찍기>, <매지컬 미스터리 투어>(공저), <서울 미술산책 가이드>(공저), <한국의 근대건축>(공저), <런던-기억>, <미술이 온다> 등의 저서와 공역서 <고고학의 모든 것>이 있다. 전시 <은밀하고 황홀하게展>과 <페스티벌284: 美親狂場>, <프로젝트284: 시간여행자의 시계>를 기획했고, 개인전 〈미술기자 Y씨의 뽕빨 111번展>을 열었다. 현재 미술 저널리스트 겸 전시기획자, 페도라프레스 편집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메일 fedorapress@naver.com[출처] 올댓아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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