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블로흐-바우어
부부는 자녀를 얻지 못했다. 아델레는 1925년 세상을 떠나며 남편인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에게 자신의 재산 중 그림은 모두 오스트리아 정부에 기증하라는 유언을
남겼다. 블로흐-바우어 부부는 아델레를 그린 두 점의 초상화를 비롯해서 다섯 점의 클림트 그림을 소유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후에 나치스가 이 다섯 점을 모두
몰수했다. 종전 직후인 1945년 사망한 페르디난트는 자신의 조카 세 사람에게 그림의 소유권을 넘겼다. 그중 한 명인 마리아 알트만은 나치스의 마수를 피해 미국으로 망명해 미국 시민권을
얻었다.
… 1999년,
73세가 된 마리아 알트만이 그림의 소유권을 주장하며 오스트리아 정부에 소송을 걸었다. 개인과 국가 간의, 이길
가능성이 거의 없어 보이는 긴 싸움이 시작되었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아델레의
유언 —자신의 그림을 정부에 기증한다— 을 근거
삼아 그림의 소유권이 오스트리아에 있다고 주장했으나 놀랍게도 국제사법 재판소는 이 그림의 주인은 그림의 모델인 아델레가 아니라 남편
페르디난트였다는 결론을 내림으로써 알트만의 손을 들어 주었다.
애당초 클림트에게 그림을 청탁한
이도, 그리고 그림 값을 지불한 이도 페르디난트였다는 것이 판결의 결정적
이유였다. 2006년,
고별 전시 끝에 두 점의 아델레 초상을 비롯한 클림트의 그림 다섯 점은 벨베데레 미술관을 떠나 미국으로
옮겨졌다.
… 오스트리아 대사를 지냈던 화장품 회사 에스티 로더의 상속자 로널드 로더
Ronald Lauder는 1억 3천500만 달러에
1907년 작 〈아델레
블로흐-바우어의 초상〉을
사들였다. 그는 열네 살 때 이 그림을 처음 본 후, 매년 이 초상을 보기 위해 벨베데레 미술관을 찾았을 만큼 열렬한 클림트
애호가였다. 알트만은 그림을 판매하며 ‘새로운 소유주는 그림을 대중에게 공개해야 한다’는 조건을 내걸었다. 현재 이
초상은 로더 가문의 미술관인 뉴욕 노이에 갤러리 Neue Gallery에
전시돼 있다. -<클림트> 中에서
아델레는 성공한 은행가의 딸에서 열여덟
살이던 1899년 역시 성공한 사업가 페르디난트와
결혼했다. 35살의 페르디난트는 어린 아내가 소중했고, 자랑하고 싶었을 게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고 싶었던 페르디난트 그녀를
문화계 인사들이 드나드는 살롱의 안주인으로 만들었다.
… 관람객의 시선은 드레스와 배경을 메운 현란한 장식들에만
집중된다. 그림의 주인공이 아델레인데도 불구하고, 그림이 정작 보여주는 건 ‘아델레’라는 한 인간의 모습이
아니다. 장밋빛인 그녀의 얼굴과 목에 비해 어깨 아래, 드레스에 감춰진 몸에서는 어떠한 양감도 느껴지지 않는다. 화려한 장식들 속에 인형같이 아름다운 여자를 끼워 넣은 듯한 느낌, 어찌 보면 쇠사슬 같은 금속 장식들이 그녀를 옴짝달싹할 수 없도록 옭아매고 있는 듯 보이기도
한다.
… 황금과 고대 문양 속에
갇혀 있는 아내의 초상을 보고 페르디난트 블로흐-바우어는 크게
만족했다. 말 그대로 ‘황금의
여자’로 자신의 아내를 사람들에게 과시할 수 있었을뿐더러, 이 초상을 통해 자신의 경제적 능력도 자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더구나 당대 최고의 화가 클림트의 작품을 통해 페르디난트는 예술 애호가로서의 위상도 한껏 높일 수
있었다. 어디로 보나 이 초상은 페르디난트와 아델레 부부의 살롱에 걸기 딱 맞는
그림이었다. -<클림트> 中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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